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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계 반성 계기로 종말론 「10·28」휴거 소동-종교학자들이 말하는 원인· 치유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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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다미선교회 계열의 휴거론자들이 주장했던 1992년 10월28일 자정 종말설은 끝내 일과성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나팔소리를 앞세운 예수의 공중재림도 없었고 신도집단들에 대한 공중들림(휴거)사태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결과는 충분히 예상되던 것이었다. 유사이래 수없이 점철한 종말예언들이 하나같이 불발로 끝났다는 경험칙에 비추어서 그랬고 인과론적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집단실종」의 이적에 대해 현대의 과학적 관념은 좀처럼 신뢰를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나 정부당국이 우려했던 것처럼 휴거불발로 인한 자살 등의 집단광기가 따르는 부작용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확신의 좌절이 몰고 오는 후유증은 우리사회에 의외로 긴 그림자를 드리울지도 모른다. 특히 이들 시한부종말론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근본적 원인이 기존 기독교 모집단이나 사회의 불안정·부조리에 있다는 지적이 타당하다면 그 원인제거의 노력 없이는 이같은 현상이 언제 어디서고 재발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종교학자 윤이흠 교수(서울대)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비정상적인 광신에 빠져드는 원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그들을 무조건 사교·이단집단으로만 몰아붙였기 때문에 예언이 빗나갔을 경우 그들이 다시 돌아서 나올 수 있는 출구를 미리 봉쇄한 꼴이었다』며 『휴거가 이뤄지지 않은데 대한 좌절감과 함께 정상적인 사회귀환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부 광신도들이 난동을 부릴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윤 교수는 『휴거로 인한 불상사가 아직 없어 다행이지만 문제는 그런 주장이나 현상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들이 대부분 기성교회에서 옮겨간 신자들이라는 점을 심각하게 음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모집단이 기복과 같은 반지성적·이기적 신앙과 신비경험만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이른바 「이단집단」의 출현을 부추긴측면도 없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휴거불발의 후유증을 치유할 극적인 처방은 없다』며 『다만 휴거론자들에게 빌미를 주었던 기성기독교 모 집단이 백정과 체질개선의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가고 건강한 국민윤리를 정립해 나가는 길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서광선 교수(이화여대)는 10.28 휴거론자들이 기독교 근본교리의 하나인 「종말론」을 비성서적으로 해석하는 병리적 곁가지에 다름없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휴거불발로 그 허구성이 입증된 만큼 사회는 패배한 그들을 비웃거나 비난하지만 말고 오히려 따뜻하게 위로하고 품속에 맞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말을 「하나님만이 아는 일종의 섭리」로 풀이하는 서 교수는 따라서 최근의 신학적 해석이 제시하는 것처럼 『종말은 인간역사의 끝에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각오로 바른 세계관과 정의로움을 지키며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삶의 자세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갈 때 「종말」이란 고통스러운 드라마 없이도 『하나님이 몸소 다스리는, 눈물·근심·배고픔이 없는 유토피아로서의 종말의 참모습이 현세에 구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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