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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입체 교차로 급증 차량 홍수 "예고"-북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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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중국 최고실권자 덩샤오핑은 북경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국지도자들이 모 여사는 북경시내 특수지역인 중남해는 더더욱 싫어한다.
등소평은 지난 1∼2월 개혁· 개방의 가속화를 호령할때도 광주· 상해 등 남쪽 지방으로 굳이 내려가 일판을 벌였다. 마치 고마오쩌둥이 중국혁명에서 농촌을 근거지로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처럼 등소평도 지방에서 중국 사회주의의 본산 배경을 공략한 것이다.
등소평은 중남해를 벗어나 북경교외의 산간에 거처를 마련해 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단명했던 중국 황제들의 거처였던 중남해의 징크스를 피하려는 뜻도 있겠지만, 사회주의 혁명 1세대들의 체취가 배어있는 중남해의 낡은 분위기가 자신의 개혁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 유력하다.
북경은 중앙집권적인 사회주의 중국의 수도인 동시에 개혁·개방에 방해가 되는 「보수의 아성」 이기도 하다.
북경이 가지고 있는 이같은 「두얼굴」은 지난 49년 사회주의 중국이 출범했던 당시부터 그 기층을 형성해왔다.
당시 인구 1백여만명이었던 북경 주민들은 훨씬 더 많은 외지인들을 일거에 맞아들였다.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하는 당·정·군 지도간부들과 지식인들이 전국 각지에서부터 북경으로 대이동 해온 것이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북경원주민과 외지인의차이는 뚜렷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낡은 전통가옥들인 사합원을 국가로부터 배정 받아 사는 원주민거리는 지금도 밤이면 「팔을 뻗으면 손가락이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에 묻힌다.

<개혁의벽 중남해>
교육수준이 낮은 노동자들인 원주민들에 비해 사회주의 주역들인 외지인들은 모양이 번듯한 아파트를 차지하고 있다.
최고위층은 황제가 살던 중남해의 높은 담벽 안에, 그 위에 감시용 TV카메라를 설치하고 산다.
평등이라는 사회주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는 북경의 주택실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북경에도 예외 없이 변혁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하지만 북경이 지닌 2중 구조를 간과하면 배경의 실상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북경이 지닌 두 얼굴이 개방·개혁과 관련하여 절묘하게 종합이 이뤄진 예로 지난3월부터 시작된 「파리 잡기 운동」을 들수 있다.
이 운동은 북경이 국제도시로 선전되는 출발점으로 궁극적으로 오는 2000년 하계올림픽유치를 위한 것이다.
「파리 없는 도시 건설하여 올림픽 유치하자(건설무승성 쟁판오운회)」를 캐치프레이즈로하고 「파리를 보는 대로 우리 모두 때려잡자(견도창승 인인함타)」를 행동요강으로 하여 무려 1백만명이 동원됐다.
7, 8, 9월의 「파리 잡기 돌격기간」 중 2만6천개소의 「파리소굴」소탕, 27만t의 쓰레기 청소 실적을 올리고 나중에 이에 대한 논공행상이 있었다.
올림픽 유치를 위해 파리 잡기부터 시작하는 북경은 어떤 사업이거나 원점에서 대중동원식으로 일을 벌이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만큼 북경은 중국의 수도로서 명령 하달식 체질에 익숙해 있으며, 그 주민들은 피동의존심리에 젖어있다..
북경에는 공사관념이 뚜렷한 사회현상이 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낡은 집이지만 대부분컬러TV(보통 21인치 이상)·냉장고·세탁기를 갖추고 있다.
이 모든 가전제품들은 대부분 정성껏 만든 커버로 덮여있다.
온 가족이 허리띠를 졸라매 사들인 귀중품인 가전제품에 먼지라도 앉을까 사용할 때는 커버를 걷고 그렇지 않을 때는 덮어두는 것이다. 심지어 선풍기나 전자레인지에도 커버가 있다.
「내 것」은 이처럼 아끼니 10년을 가도 말짱하다. 그 반대로 「남의 것」인 공공시설은 고장 없이 1년 가는 것이 드물다. 주식인 쌀과 밀가루는 배급해 주고 가옥은 3∼4위안의 월세만 내면 해결되므로 돈을 들일이유가 없다. 나머지 돈으로 알뜰하게 내 것 간수에 골몰한다. 이를 두고 북경인 자신들은 『공사가 분명하다』고 풍자한다.
사회주의 체제하에 의타적 생활방식에 길들여져 온 북경에 개방·개혁바람이 불어닥친 것은 이같은 관점에서 볼때 가위 역사적이며 혁명적이다.
내 것 챙기기가 공식 인정되면서 개인은 개인대로, 시 정부는 시정부대로 실적 올리기에 떨쳐나서고 있는 것이다.

<벼룩시장 북새통>
북경에 벼룩시장이 등장한 것은 지난 9월. 오전8시부터 수만명의 인파가 장터로 공개된 학교교정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기념품 따위를 되파는 관리, 고교시절 쓰던 문제집을 「대학입학의 지름길」이란 광고를 써놓고 내놓은 대학생….
잠자던 인간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 거대한 시장이다.
월급이란 정액으로 살던 시대는 이미 가버렸다. 구석구석 돈 나올 곳은 모두 뒤진다. 지식인은 강사·번역·회계상담 등 자신의 지식을, 육체가 밑천인 사람은 노동으로 부수입을 올린다. 거리모퉁이에 담배좌판만 펴도 월급의 두배가 넘는 5백∼6백위안 소득은 너끈하다. 지도층 일부가 저지르는 부정부패도 어찌 보면 자신의 권력을 「현금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한편 북경시 정부는 「새로운 북경」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북경엔 10층 이상 고층건물 1천여개가 솟았다. 자전거시대가 퇴색하고 자동차시대를 예고하며 입체교차로가 60여곳에 등장했다.
북경∼천진 고속도로를 시속 1백50㎞로 질주하는 승용차들. 차량사고가 나도 과거엔 1대1이 고작이던 것이 6중·7중 충돌사고도 일어나고 있다.
북경의 심장부 왕부정의 번화가 일부가 3억 위안에 대만자본에 팔려나가 화제가 됐다. 그만큼 외자유치를 위해 적극적이다. 올해들어 지난6월말까지 2백개 외자기업이 진출했다고 북경시는 선전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중국의 수도로서 북경은 다른 도시와 경쟁만 벌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마치 서울시안에 포정제철이 위치한 격인 수도강철과 같은 대규모 중공업 시설이 엄연히 북경에 존재하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 경제건설 시기의 유산으로 공업위주로 개발된 북경은 지금 대기오염· 교통난·식수난·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먹거리산업 번창>
공업시설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시 재정수입의 80%를 이 분야에 기대고 있는 북경은 과연 이를 치유할 능력이 있는지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역사유적인 북경 자금성이 대기오염에 찌들고 문화유적들이 산성비에 젖으며 만리장성이나 명십삼릉 등 교외의 유적들이 공장연기에 찌드는 현상은 소련식 모델을 무분별하게 모방한데서 기인한다.
고도 북경은 수도로서의 효율성을 갖추지 못한채 사회주의 경제모델로 개발된 터위에 섣부른 서구화의 외양을 다시 접목하는 것으로 개방·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경은 표면상 손색이 없어 보인다. 북경인들이 다른 지역에 사는 중 국민들을 얕보고 우쭐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인민복을 벗어 던지고 서방고급상표의 유행을 추구하며 한국 불고기집, 미국 패스트푸드점, 일본· 홍콩의·「미식성」등 먹거리 산업이 번창하는 등과 소비풍조가 서서히 머리를 쳐들고 있다.
『사회주의세득호
자본주의간득호
사회주의제도호
자본주의생활호』
말로만 좋고 제도만 그럴듯한 사회주의보다 능률 있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자본주의가 좋다는 북경인들의 풍자시다.
그러나 이 속에는 자신만 잘되면 그만이고 국가대사는 아랑곳 않겠다, 돈만 벌어 내 생활만 챙길 뿐이라는 좌절감이 깔려있다.
북경의 한 택시기사는 『14전(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자오쯔양 전 총서기 문제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아느냐』는 기자질문에 관심도, 알 필요도 없다는 태도였다. 북경시내 무역센터에서 북경역가지 택시요금은 14위안. 시내버스 요금인 20전의 70배나 된다.
90년 중국의 1인당 GNP는 서방선진국의 30분의1 수준. 따라서 최소한 경제감각을 그만큼 강압시켜야 보통 배경인의 생활감각에 다가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북경역은 외국인에겐 충격적이다. 매표창구 앞에 만리장성을 이룬 시골사람들, 벌이가 좋다는 북경의 막노동판을 찾아와 월3백∼5백 위안의 벌이를 하고 전국으로 흩어지는 광경이다. 이들에게 배경나들이는 「대사건」에 해당한다. 시골에서는 그 중에서도 깬 사람들이지만 하늘의 별따기인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별다른 방법이 없다. 초저녁부터 앞뒤 사람이 서로 포개지듯 달라붙어 서서(지나가기 위해 양해를 구했지만 아무도 틈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까지 표를 사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못 사면 길바닥에서 노숙하고, 다음날은 더 일찍 줄을 선다.2박3일, 3박4일을 꼬박 서서 가는 무리도 있다.
대합실과 역광장을 메우고있는 이들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사회주의 중국 안에 이같은 인구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역 광장에서는 대형 스피커를 통해 전에서 장쩌민 총서기가 발표한 정치보고에 대한 선전이 쏟아져 나왔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고…개방·개혁속도를 높여…』
개방· 개혁의 열차는 엄청난 승객을 태우고 어둠 속을 달리고 있다. 【글=전택원 특파원·사진=신동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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