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야할 「총체적 위기」/김호길(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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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논어』의 안연편에 「자공이 정치를 물었을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족식),병을 풍족하게 하고(족병),백성들이 믿게 하는 것이다(민신지)」는 말이 있다. 족식·족병·민신지의 세가지 가운데 우선 순위를 자공이 다시 물었을때 공자는 신이 첫째고 다음이 식이고 그다음이 병이라 했다. 신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고 따라서 식과 병을 해결할 주체가 없게되며 식이 없이는 병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정부,건전한 경제,튼튼한 국방의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는 얘기고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문제가 깊으면 위기라 볼 수 있으며 이 세가지 모두에 문제가 깊이 존재하면 총체적 위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요사이 우리 사회에 총체적 위기라는 말이 이따금 나오는데 대선을 앞두고 위의 세가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방위력 감축논란 우려
6·25동란이후 지난 40여년간 우리가 세가지중 국방에 힘쓴 결과와 미국의 도움으로 국방에서는 비교적 문제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구소련의 붕괴이후 강대국간의 냉전은 제거되었지만 세계에서 우리만이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그리고 북한의 상황이 10년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으며 아직도 주체사상하에 95년까지 남북통일을 이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더구나 핵무기문제,최근의 간첩단사건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에게 빈틈없는 경계가 요망된다. 그런데도 러시아 및 중국과 수교를 이룩한데서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풀리는듯 하고 낙관론자들은 방위력의 감축까지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왕조에 가까운 김일성 부자체제,종교에 가까운 주체사상이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한 전쟁의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만 하겠다.
국방보다는 경제에서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농업에서 들어보면 쌀·쇠고기 등 농산물이 미국의 기계화된 농산물과 경쟁이 안되고 마른 나물·한약재·잡곡 등은 노동가가 헐한 중국과 경쟁이 안된다. 그렇다고 농산물에 수입규제를 하면 공산품 수출에서 보복규제를 당할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기술중시 풍토 조성을
이러한 선진국과 후진국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 샌드위치 신세는 농업뿐 아니라 공업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시장개척·자본도입·조립산업·장치산업 등 양산체제의 경제다. 조립산업이나 장치산업은 심층기술을 필요로 하지않는 산업으로 자본과 경영능력만 있으면 부품수입과 장비도입으로 경영이 가능한 분야다.
그리고 외제부품을 사용한 조립산업은 수입에서 국산화란 이름밑에 완제품수입에 대한 규제를 피하는 길이며 수출에 있어서 외국부품 수출대행업체라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본과의 무역격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산업이 일본 부품·일본 장비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이다.
외국부품을 사용한 조립산업에서의 부가가치는 조립과정에서의 노동가에 불과하고 노임이 상대적으로 비싸진 우리나라는 다른 중진국에 비해 이제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조립을 통한 양산이 위주인 우리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지려면 양산과정의 자동화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소재,새로운 부품을 만들어 조립산업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새로운 소재,새로운 부품을 설계하고 제작하기 위해서는 과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기술이 있어야 하며 고도의 기술인을 양성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산업의 문제점은 기술을 제외한 다른 경제지수가 선진국에 너무 가까운 반면 기술패권시대의 핵심인 기술은 중진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데 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기술발전을 단시일에 이룩할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이다. 기술발전은 기술인에 의해 이룩되는데 기술인을 기르는 대학교육이 부실하고 기업이 기술인을 중시하는 체제를 갖추지 않고 있으며 기술인을 중심으로 하는 중소기업이 많지 못하다.
우수한 기술인 양성이나 기술인을 중시하는 체제의 건설은 짧은 시일내에 이룩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기술은 기업에 존재하고 기업에 의해 발전되는 것인데 기업의 기술발전 노력이 미흡한데 문제가 있다. 정부가 할 일은 기술개발을 직접 돕는 일보다 기술개발의 풍토조성과 기술인을 양성하는 대학을 도와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이룩하는 일이다.
○지도자는 믿을만한가
국방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주역인 정치가들을 믿을 수 있느냐 하는데도 문제가 없지않다.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 많은 공약을 하는데 그 공약이 실현성이 있는 것인지,기술패권시대에 알맞은 공약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리고 지도자 개개인을 놓고 지난 30년동안의 행적과 언행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았을때 그분들의 언행은 일치하는지,따라서 그분들이 지금 하는 얘기를 믿어도 좋은지 모두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언론·학계 및 사회가 정직하고 유능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고 있는지도 반성해 볼 일이다.
우리 모두 우리나라가 놓인 환경과 앞날을 깊이 생각해 믿을 수 있는 지도자를 당선시켜 이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가야겠다.<포항공대학장·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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