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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ZARA)’ 패션왕국 인디텍스의 ‘23세 여성 후계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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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18면

올해 나이 스물셋. 스페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미녀 승마 선수가 세계 최대 패션기업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를 기수로 맞이할 기업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ㆍ유행에 따라서 빨리 바꾸어서 내놓는 옷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선두주자 ‘자라(ZARA)’로 유명한 스페인의 인디텍스(INDITEX) 그룹. 패션왕국으로 불리는 인디텍스는 세계 각지에 3300여 개 매장이 있으며 오는 7월 한국에도 상륙할 예정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창업자인 아만시오 오르테가(71) 회장의 막내딸 마르타 오르테가(23)다.

세계 8대 부호 막내딸이 경영 승계

스페인 서북부 갈리시아에 본사를 둔 인디텍스는 총 7개의 브랜드가 있다. 그룹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자라(ZARA), 직장인을 위한 마시모 두티(Massimo Dutti)와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 젊은 층에 어울리는 캐주얼복 풀 앤 베어(Pull & Bear)와 베르시카(Bershka), 속옷 전문 브랜드 오이쇼(Oysho), 그리고 아동복 브랜드인 키디즈 클래스(Kiddy’s Class)다. 이 중 일반인에게 가장 인기있는 자라는 56개국에 860여 개 점포를 둔 세계적인 남녀 종합 패션 브랜드다. 초고속 스피드로 2주마다 새로운 컬렉션을 출시한다.

인디텍스의 역사는 35년 전인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은 갈리시아에 전 부인과 함께 작은 옷가게를 열어 직접 제작한 옷을 팔았다. 고객의 반응이 좋자 점차 사업을 키워 지금의 인디텍스 그룹을 만들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 미 경제잡지 포브스가 발표하는 ‘세계의 부자들’ 순위에서 그는 총자산 240억 달러로 올해 8위에 올랐다.

인디텍스 수장이 되기 위한 마르타 오르테가의 경영수업은 오는 9월 시작된다. 그가 어떤 교육을 받을지는 인디텍스의 기업문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르테가 회장은 ‘실무형 인재’를 항상 강조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모든 디자인에 일일이 간섭할 정도다. 인디텍스가 생산하는 모든 제품은 반드시 그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회장이 재봉사 출신이니 적당히 일했다간 큰코다친다.

이 거대 패션기업 인디텍스의 후계자가 결코 그냥 되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일간지인 엘파이스에 따르면 마르타는 아만시오 오르테가식 혹독한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녀는 지난해 12월 인디텍스의 소규모 자회사 가르틀레르(Gartler)와 파르틀레르(Partler)의 서류상 부사장이 됐다. 하지만 당분간 본사 사무ㆍ관리직으로 우아하게 근무하는 건 꿈도 못 꾼다. 마르타는 9월 인디텍스 그룹 베르시카 사업부에 입사, 스페인 내 445곳 매장 중 한 곳에서 일하게 된다. 스페인 최고 부자의 막내딸이 매장에서 땀을 흘려 월급받는 밑바닥 점원이 되는 셈이다. 그는 아침 7시 반에 출근해 물류 리셉션 일부터 해야 한다. 접어서 보관할 옷과 옷걸이에 걸어야 할 옷을 분류한다. 계산대 앞에 놓인 사탕바구니가 비었는지 수시로 살피는 것도 그의 업무다.

베르시카 매장은 ‘옷이 진열된 놀이터’로 통한다. 10대부터 20대 초반 여성들이 매장에 들러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자유롭게 옷을 고른다. 손님이 매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 가게 문을 연 시간부터 닫는 시간까지 사람이 붐빈다. 이런 근무환경에서 그는 빠른 업무 처리와 일의 우선순위, 손님 응대 요령 등을 익히게 된다. 인디텍스 관계자는 “업무량이 정말 많다”며 “매장에 온 손님 중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는 젊은 직원이 마르타임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 한 달 반의 현장 트레이닝이 끝나야 마르타는 겨우 본사로 입성할 수 있다. 비로소 일반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것이다. 재정파트와 기획실을 거쳐 판매분석 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그는 다른 직원과 같은 월급을 받고 만약 큰 실수를 저지르면 시말서도 써야 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스페인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해외지사에서 업무를 익히도록 스케줄이 짜여 있다. 일할 지역도 벌써 정해졌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그리고 중국 상하이를 거쳐 다시 스페인 본사로 복귀한다.

해외근무 경험까지 쌓으면 드디어 인디텍스 그룹의 핵심인 제품생산 및 디자인 파트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곳에서 그룹 경영을 보는 안목이 생기면 홍보부와 법무팀으로 옮긴다. 실무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이런 과정을 제대로 거치면 2010년께 임원으로 승진시킨다는 게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이 구상해놓은 후계자 코스다.

오르테가 회장이 왜 스물셋, 그것도 막내딸인 마르타를 후계자로 정했을까. 게다가 마르타는 둘째 부인의 소생이다. 오르테가 회장은 첫째 부인 로살리아 메라 사이에서 1남(마르코스) 1녀(산드라)를 두었다. 둘째 부인 플로라 페레스와는 마르타 하나만 낳았다.

오르테가 회장이 마르타를 유난히 아껴서일까, 아니면 첫째 부인과 사이가 안 좋아서일까. 둘 다 아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오르테가 회장은 세 자녀 모두 끔찍이 아낀다. 첫째 부인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오르테가 회장은 86년 이혼 당시 위자료 명목으로 인디텍스 지분 7%를 로살리아에게 증여했다. 그 후 인디텍스 주가는 계속 올랐고 로살리아도 왕성한 기업활동을 펼친 덕에 올해 포브스 세계 부자 리스트 264위에 올랐다. 굳이 전 남편과 좋지 않게 지낼 이유가 없다.

마르타가 후계자로 뽑힌 이유는 그의 이복 언니와 오빠에게서 찾을 수 있다. 장녀 산드라는 로살리아가 설립한 파이데이아(Paideia) 자선재단에서 일한다. 그는 아버지와 관련된 사업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마르코스 역시 인디텍스 사업과는 관련없는 일을 하고 있다. 오르테가 회장의 자식교육 방식의 핵심은 ‘자율성’이다. 첫째와 둘째가 기업경영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채근하지 않았다. 자신도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총수임에도 본인 결혼식 빼고는 넥타이를 맨 적이 없을 정도다.
 
판매직부터 시작

그렇다고 마르타가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는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그룹 CEO가 될 수 있다. 그는 공식석상에 나타나기 전인 18세까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 여러 남성과 사귀었다. 가장 오래 만난 남자 친구와의 교제기간은 6개월이다. 좋아하는 승마도 원없이 즐겼다. 그러나 18세 생일파티 이후로 모든 게 변했다. 승마 경기에 출전하는 횟수가 줄었고 사생활에 대한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애정전선과 관련된 소문도 잠잠해졌다. 그룹 관계자는 “사실상 이때부터 후계자 교육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마르타의 가업 승계에는 두 가지 변수가 있다. 바로 오르테가 회장의 건강과 마르타의 결혼이다. 몇 해 전 오르테가 회장은 건강이 나빠져 병원 신세를 졌다. 올해 23세인 마르타가 안정적으로 그룹을 경영하려면 적어도 15년은 지나야 한다. 현재 건강상태는 문제가 없다지만 앞으로 그가 몇 년을 더 건강하게 살면서 그룹을 이끌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마르타가 2년째 교재 중인 승마선수 멘데스 누녜스와의 결혼설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소니아 프랑코 포브스 스페인 편집장은 “마르타의 어머니가 인디텍스 매장 직원이었던 만큼 상류층 자제와 정략결혼은 없을 것”이라며 “사위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에 딸을 더욱 확실하게 교육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스페인의 가족법은 프랑코 편집장의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한다. 스페인은 모권(母權)이 유난히 강한 나라로 이혼을 하면 대개 재산은 아내에게 귀속된다. 정신상의 문제만 없으면 양육권도 어머니가 가져간다. 혹시 결혼을 잘못 하더라도 마르타 몫은 온전하다는 뜻이다.

오르테가 회장 성격대로라면 마르타는 더욱 강도 높은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는 딸이 아직 어리다는 것을 감안, 차근차근 기회를 주고 있다. 오르테가 회장은 최근 그룹 경영진 회의에서 “자라가 하루빨리 갭(GAP)과 H&M을 눌렀으면 한다”고 말했다. 패션기업 규모로는 세계 1위지만 단일 브랜드로는 자라가 아직 3위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캐주얼 브랜드 유니클로(UNIQLO)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나의 목표는 인디텍스를 잡는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인디텍스가 세계 1위 자리를 계속 지킬지, 아니면 유니클로 같은 경쟁브랜드에 밀릴지는 오르테가 회장과 마르타에게 달렸다.

인디텍스는 오늘도 순항하고 있다. 올 상반기 순이익은 2억4620만 유로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9% 증가했다. 자라의 매출은 18억5740만 유로로 전년 대비 15% 성장했다. 인디텍스 그룹이 올 상반기에 새로 문을 연 매장은 160개로 연말까지 450개를 더 열 계획이다.

“다음달께 한국에 직영매장 열겠다”

인디텍스는 이르면 다음달 ‘자라코리아’를 설립해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 자라코리아 대표는 한국까르푸 상무 출신인 이봉진씨가 내정됐다. 한국 1호점은 서울 강남역 인근에 500여 평 규모로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지난해 인디텍스 그룹과 합작 법인(지분율 인디텍스 80%, 롯데 20%)을 설립한다고 홍보했던 롯데의 계획은 무산됐다.

당시 롯데는 신세계ㆍ현대백화점 등 경쟁상대를 의식해 불평등한 조건에도 서둘러 1차 계약을 했다. 위약금도 100% 롯데가 부담하는 조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쇼핑 해외사업팀 관계자는 “자라에 눈독을 들인 업체가 많아 인디텍스는 항상 ‘갑’이었다”며 “심지어 자라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자료에도 문제를 삼아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사실확인을 위해 인디텍스 본사 홍보담당자 사라이(Sarray)와 통화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민감한 문제라서 답변할 수 없다”면서도 “우리도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롯데의 협상 담당자는 스페인어도 못하는 사람이었다”며 “스페인의 문화조차 알지 못하고 협상에 뛰어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존심이 강한 스페인 업체와 협상하면서도 협상 담당자가 영어만 썼다는 불만이다. 국제적인 협상의 기본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협상 파트너가 ‘우리가 롯데인데…’라는 말만 하고 우리를 무슨 스페인의 옷가게쯤으로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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