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수사 관행에 쐐기/“영장없는 구금 위법” 판결의미(해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검거위주 불식 피의자 인권보호/비슷한 피의자들 소송 잇따를듯
영장없이 피의자를 강제연행한뒤 48시간내에 일반영장을 발부받아온 지금까지의 수사관행이 불법인만큼 이에 대해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서울민사지법의 판결은 영장주의 원칙을 위배하는 어떠한 편법도 용납할 수 없다는 법원의 의지표명으로 풀이된다.
이번 판결로 피의자를 영장없이 구금하더라도 48시간 이내에 풀어주든지,일반영장을 발부받으면 적법하다는 이른바 「48시간 관행」이 깨진 셈이 됐다.
지금까지 검찰·경찰·안기부 등 수사기관은 현행범이 아닌 피의자를 영장없이 체포할 경우 「긴급구속」규정을 원용,구금한뒤 이 기간을 구속일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긴급구속이란 형사소송법 2백6조에 따라 사형·무기 및 장기 3년이상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피의자에 대해 판사의 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는 긴급한 상황에서 영장없이 구속하는 것으로 반드시 사후에 판사로부터 일반영장이 아닌 긴급구속영장을 발부받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관행적으로 긴급구속영장이 아닌 일반영장으로,구속시점도 체포당시가 아닌 발부시간을 기준으로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해왔다.
따라서 체포당시부터 영장발부때까지 영장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로 남게되고 구속일수 계산에서 제외된다.
이번에 법원이 불법구금으로 인정,손해배상토록 한 것도 이 부분이다.
수사기관이 이러한 편법을 써온 이유는 일반영장을 이용할 경우 통상 사건의 경우 경찰 10일,검찰 20일로 제한돼 있는 수사기간에서 최고 48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데다 사후 긴급구속영장을 신청할 경우 구속당시 상황이 판사의 영장을 받을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이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기 때문.
검찰은 이에 대해 『일반영장을 받으려면 사전에 영장을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와 혐의내용이 확보돼야 하나 피의자의 조사없이는 사실상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현재의 형사소송법 원칙을 모두 지키며 범인을 구속하려면 수사상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반면 지금까지의 수사관행에 의해 사실상 불법구속을 당해온 피의자들은 수사기관에서 최고 48시간의 추가수사를 받아온데다 형이 확정될 경우 선고전 구금일수를 형량에서 빼주는 「미결통산일수」에서도 불이익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편법적인 긴급구속을 이용해왔던 수사관행이 이번 판결로 제동이 걸려 당국으로서는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즉 현재처럼 긴급구속의 형식으로 피의자를 구속하려면 법원에 원칙대로 긴급구속영장을 신청하든지,아니면 구속이전에 법원의 일반영장을 받아 이에 의해 피의자를 구속하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고 48시간의 불법감금을 당했던 피의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같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된다.<남정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