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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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느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
우리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나무이다.

그 모양이 우리를 꼭 닮았다.
참나무는 튼튼한 어른들과 같고
앵두나무의 키와 그 빨간 뺨은
소년들과 같다.

우리가 저물녘에 들에 나아가 종소리를
들으며 긴 그림자를 늘이면
나무들도 우리 옆에 서서 그 긴 그림자를
늘인다.

우리가 때때로 멀고 팍팍한 길을
걸어가면
나무들도 그 먼 길을 말없이 따라오지만,

우리와 같이 위으로 위으로
머리를 두르는 것은
나무들도 언제부터인가 푸른 하늘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가을이 되어 내가 팔을 벌려
나의 지난날을 기도로 뉘우치면,
나무들도 저들의 빈손과 팔을 벌려
차운 바람과 찬 서리를 받는다, 받는다.



전남 광주에서 명편을 남겼다. 서정주가 전쟁의 참상에 대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다형을 찾아 광주에 간 건 유명한 일화. 시의 요체는 나무가 인간처럼 수직으로 산다는 것. 치유의 모든 사유는 눕지 않는 나무 밑에서 왔다. 한여름 속에서 멀리 가을을 본다. 하늘을 사랑한다고 외친다. 죄가 없어도 늘 기도하는 나무가 서리를 받듯이 나도 찬 바람을 맞고 싶다.

고형렬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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