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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위기, 그 고민과 해법 보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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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진보 지식인들의 고민과 화두는 무엇인가. 신영복(66) 성공회대 석좌교수, 김종철(60.'녹색평론'발행인) 전 영남대 교수, 최장집(64) 고려대 교수, 박원순(55.'희망제작소'상임이사) 변호사, 백낙청(69.'창비'편집인) 서울대 명예교수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적 지성들이 뜻을 모아 '여럿이 함께'(프레시안북)라는 책을 펴냈다.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이란 부제를 달고 '진보의 위기'를 타계할 대안을 모색했다.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대표 박인규)이 창간 5주년을 맞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연속 기획 강좌를 묶어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반도식 통일=현 정부에 대한 평가 등을 놓고 다소 다른 목소리를 내온 백낙청.최장집 두 교수의 육성이 나란히 실려 눈길을 끈다.

최 교수의 화두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다. 민주화 '운동'이 민주 '정치'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를 묻는 최 교수의 비판이 매섭다. "정부의 책임을 보수 언론이나 의회 안팎의 보수 세력 탓으로 돌리는 식이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는 그의 지적은 바로 오늘의 시점에서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백 교수의 화두는 '한반도식 통일'. 독일.예멘.베트남 등과 다른 방식의 통일을 강조하는 그는 한반도식 통일이란 "시민이 참여하는 점진적 통일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녘 시민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제7 당사자'이자 남북관계 '제3 당사자'"란 점을 특히 부각시켰다. 백 교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관련해, 분단체제에 물어야 할 책임을 정부에 다 돌려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길의 철학'이 필요한 때"=신영복 교수의 목소리는 이번 기획의 전체 분위기를 훈훈하게 조율하고 있다. '대립과 갈등의 시대,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라는 제목 아래 그는 우리 사회가 지향할 바를 '길의 철학'이란 말로 정리했다. "목표.속도.효율만을 중시하는 논리는 '도로의 논리'라고 부릅니다. 그에 반해 과정 그 자체를 중시하는 철학을 '길의 철학'이라 부릅니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도로의 논리'에 의해 빚어졌습니다. 이제 그것을 대체하는 '길의 철학'이 필요한 때 입니다."

'생태주의 철학'을 전파해온 김종철 교수는 "한미 FTA 협상 결과가 '우리'쪽에 유리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협정의 궁극적인 귀결이 결국 인간 공동체의 파괴와 생태적 파국이란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운동의 위기'가 거론되는 현상에 대해 '시민운동의 대부'박원순 변호사는 "시민운동이 위기가 아닌 적이 언제 있었느냐"며 "언제나 비판.반대.고난.위기 속에서 하는 것이 진정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같은 운동이라도 창의성과 재미를 갖추어야 한다"고 그의 지적도 새겨들을 만하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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