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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사회」를 사는 지혜(정년을 이긴다:20·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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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하/“혼자가 편하다” 유료노인홈 번성/분양형맨션 인기… 레저·취미생활 소일/실버타운 열해엔 주민의 20%가 노인
『80,90세가 되어도 어제에서 오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서 오늘을 보면서 늙는다는 것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보다 좋은 지금부터의 인생을 걸어간다.』
본격적인 장수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일본의 소위 「실버산업」들이 내거는 공통표어다.
요즘 실버산업은 풍요로운 주거생활을 중핵으로 식생활·건강에서부터 교양·레저에 이르기까지 일체화되는 경향이다.
노인들이 세대가 다르고 취미나 사상이 틀린 젊은층과 동거하는 대가족제도가 오히려 자신에게 마이너스가 된다는 의식이 강해 서로 인격을 존중함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하고 있다. 자신들쪽은 이러한 부모의 생각을 존중하여 부모와의 별거에 찬성하는 것이 새로운 타입의 효도가 되고 있다.
실버산업이 파고들 수 있는 것도 이같이 변화한 노후관 덕택이라 할 수 있다. 유료노인홈의 번창이 그 상징인 셈이다. 노인집합주택으로서의 유료노인홈은 이름이 케어하우스·케어맨션·실버하우스·시니어해비테이션 등으로 다양한 만큼이나 종류도 여럿이다. 지난 63년 시행된 노인복지법 규칙에 따르면 유료노인홈은 항시 10명 이상의 노인을 수용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급식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며 노인복지시설은 아니라고 정의해 놓고 있다.
○정부지원은 없어
노인복지시설은 완전무료는 아니지만 정부 등의 공적지원을 기본으로 하는데 비해 유료노인홈은 이런 지원은 없되 상업적으로 매매를 할 수 있게 돼있다.
노인복지시설은 크게 양호노인홈·특별노인홈·경비노인홈 등 세종류가 있다. 이들 노인홈에는 건설시,일상운영시 나라나 지방자치제의 공비가 지출된다. 그러나 이용자는 비용부담규정이 있어 본인과 부양책임자의 부담능력에 맞춰 비용을 내도록 돼있다. 예컨대 특별양호노인홈의 경우 65세 이상의 신체장애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1개월비용은 20만엔이 약간 넘는다. 다만 부양책임자 지불,기관보조 등을 감안하면 순수자기부담 평균액은 2만9천엔 정도. 경비노인홈 경우 자기담은 평균 4만7천엔 정도다.
이렇게 부담이 적은데도 굳이 유료노인홈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우선 노인복지시설이 모자라 신청해도 좀처럼 들어갈 수 없고 특별양호는 4인1실,양호노인홈은 개실화가 아직 15.5%에 불과해 프라이버시를 지키는데 불편한 점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료노인홈에는 분양형과 이용권형이 있다. 분양형은 보통맨션같이 소유권이 있으며 나중에 팔 수 있다. 대부분의 홈은 소유권이 없는 종신이용권으로 돼있다. 이용권형홈은 대개 1천만∼5천만엔이나,분양형은 1억엔을 넘는 비싼 것들이 많다.
기자가 찾아간 아다미(열해)시는 유료노인홈을 배경으로 일본에서 가장 먼저 정착된 실버타운이다. 동경역에서 시간선으로 40분가량 걸리는 이곳은 인근의 하코네(상근)와 어울려 수도권 온천휴양지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상주인구 5만명중 노인인구가 1만명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대다수가 인위적으로 조성된 실버타운,즉 노인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1억엔 넘는 것도
일본에서 가장 일찍 이 분야에 나서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노인홈을 운영해오고 있는 나카긴(중은)그룹(8개기업)의 나카킨라이프케어는 10개의 콘도미니엄식으로 생긴 노임홈을 갖고 있다. 이중 대표적인 것으로 전국의 모델이 되고 있는 바이엔타이(매원대)맨션은 산중턱에 위치,바다가 내려다보이는 1급 노인홈. 10층의 부엌딸린 방하나에서 독신으로 살고 있는 다카야마 치쓰루코씨(고산천학자·72)는 올해가 입주 7년째다.
54세에 자식없이 남편과 사별한뒤 남편이 경영하던 아파트사업을 해오다 힘에 부쳐 그만두고 입주했다. 입주때 들어간 돈은 간단한 가구와 생필품을 제외하고 맨션구입에 2천5백만엔이 들었다. 취미생활로 거의 매일 당구·마작을 즐기는데 비용은 3백∼5백엔. 댄스·악기·합창·다례·붓글씨 등 여러 모임에도 어울린다.
한달 가계부를 보면 관리비 3만4천엔,수리적립비 3천엔,수도 2천엔,식비 3만5천엔에 전기료·서클비·교제비를 포함해 모두 7만5천엔이다. 다소 몸이 불편할 때엔 홈내의 간호실을 이용하는데 병세가 심상치 않으면 제휴관계에 있는 인근 병원으로 간다. 물론 경비는 실비처리다.
나카긴라이프케어의 판매를 담당하는 나카킨맨션의 다카야나기 후사요시(고유방의) 홍보과장은 분양형이 최근들어 부쩍 인기가 있으며 가격도 방수와 평수에 따라 1천만엔에서부터 1억엔이상짜리까지 다양하다고 말한다. 요즘 고급맨션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고령화사회에 일찍부터 대비한다는 노인들의 의식변화에서 오는게 아니냐고 설명한다.
그의 말마따나 신문광고란에도 동경에서 기차로 몇분거리라고 하면서 입주비 1억3천만∼1억5천만엔,월생활비 40만엔이 드는 고급노인홈이라고 선전하는 글이 많이 발견된다. 또 교토(경도)에서는 입주를 희망하는 노인들을 모아 주택조합을 만들어 고령자에 맞는 설계를 해주는 신용사업도 생겨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본의 실버산업은 현재 연간 70조엔 규모로 오는 2000년에는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조사기관들은 예측한다. 최근의 유료노인홈붐은 실버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리드해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하다.
노인홈의 사업주체도 제한없이 주식회사·재단법인·사회복지법인·종교법인 등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민영시설 말고는 후생연금 유료노인홈·간이보험우편연금 가입자홈 등이 있는데 민간의 유료노인홈에 비해 이용료가 싸다. 다만 대기자가 많고 또 기한이 설정돼있기 때문에 개호가 필요할 경우 적절히 대응을 못하는 단점이 있다.
○사업주체 다양화
일본의 유료노인홈이 안고 있는 큰 문제는 장래적으로 개호와 의료에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건강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최근 들어서야 신체적·정신적으로 개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노인홈이 따로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노인홈이라도 여러가지로 병세가 진전되는 노인에 대해 항시 안심하고 주거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정부도 전국유료노인홈협회와 도·도·부·현의 노인복지담당창구에서 지도 계몽활동을 펴고 있다.
비단 노인홈문제뿐 아니라 정부가 고령자 대책으로서 지도하고 있는 분야가 꽤 있다. 예를 들어 지난 87년에 민간실버산업업체들이 만든 실버서비스진흥회를 통해 민간재택복지서비스의 적정마크를 부여하는 것이다. 서비스의 매뉴얼내용에서 개호용품·개호기기의 임대에 이르기까지 심사를 한다.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노인성치매는 일반노인홈에서는 대책이 부족하기 때문에 각 도·도·부·현,지정 도시에 1개소씩 노인성치매질환센터를 두고 야간·휴일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센터와 노인홈의 연결은 자연적으로 이뤄진다. 이밖에 치매성노인에 관한 상담기관,치매성노인을 가진 가족모임 등도 지원하고 있다.
고령화사회에 대한 깊은 인식이 실버산업을 탄생시켰고 기업과 정부가 손을 잡아 이를 육성시키면서 고령화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아다미에서 동경 등 인접도시로 정기운행되는 노임홈전용버스도 그렇거니와 시내길에 실버타운인 관계로 운전을 주의하라는 실버표식이 설치되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사회적 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열해(일본)=곽재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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