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타 셰프, 줄줄이 서울에 뜨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2호 26면

롯데호텔에 초청돼 예술적 경지의 요리를 보여준 피에르 가니에르와 그의 작품들.

케이크와 차를 선보이는 곳과 캐주얼한 식사가 가능한 바(bar)가 1층에, 2층에는 최고의 요리사인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영국 최고의 레스토랑 ‘스케치’가 있다. 1층의 공간과 달리 2층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면 적어도 두 달 넘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아야 한다. 필자도 미리 예약하지 않은 실수로 2층은 구경만 했을 뿐 1층에서 점심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니 서울 한복판에서 그의 요리를 즐기는 동시에 직접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60만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하다지만 그것이 대수랴 싶을 정도였다. ‘식탁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그는 분자 요리(분자미식학 교수와 공동으로 식재료의 텍스처와 음식 간의 조화를 심층적으로 연구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를 과감히 매치시켜 하나의 예술품으로 요리를 재탄생시킨 것)라는 새로운 요리를 창조한, 예술가에 가까운 셰프다. 올 1월 그가 직접 재료를 선정하고 고민한 요리가 롯데호텔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롯데호텔은 이미지 변신을 위해 외국의 유명한 ‘스타 셰프’ 초청을 히든 카드로 꺼내들었고, 그 첫 단추를 끼운 이가 바로 ‘미슐린 3스타’를 받은 피에르 가니에르. 1년이 넘는 롯데호텔의 구애 끝에 그가 움직였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롯데호텔은 물론이고 W호텔도 이미지 변신과 새로운 고객 유치를 위해 실레브리티 셰프들을 초청하고 색다른 클래스와 디너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실레브리티 셰프 푸드 프로모션은 뉴욕의 재커리 펠라치오와 샌타바버라의 마이클 리트를 거쳐 지난 4월 ‘아이언 셰프’라는 TV프로그램에서 요리의 고수 바비 플라이와 경합에서 유일하게 승리해 이름을 날린 미셸 번스타인까지 세 차례나 진행됐고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파크 하얏트는 매년 4월 호텔 오픈 기념 달에 맞춰 이름난 ‘스타 셰프’ 를 초빙하는데 올해 4월에는 이탈리아 북부 전통 요리를 선보이는 ‘미슐린 스타 셰프’ 스테파노 갈로가 방한해 갈라디너와 브런치까지 선보였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초청됐던 미슐린 스타 셰프 크리스티앙 에띠엔느.

왜 호텔들이 너도나도 외국의 유명 셰프들을 초빙하기 시작한 것일까?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실질적으로 호텔의 생명력을 좌지우지하는 데에는 식음 코너, 즉 레스토랑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소위 업계에서는 ‘호텔의 물’을 유지한다고 하는데 이것을 관리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레스토랑이다. 내국인들에게 가장 크게 어필하는 서비스는 객실이 아닌 레스토랑과 관련된 이벤트인 셈. 초빙 셰프 프로모션의 경우 멀리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요리를 직접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이와 더불어 호텔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함이다.

요리는 문화를 향유하는 것
국내 호텔에서 외국의 유명 셰프를 초빙하는 이벤트를 오래전부터 선보인 선두 주자는 인터컨티넨탈 호텔이다. 1989년 인터컨티넨탈 호텔 오픈 직후 스타 셰프 초청 이벤트를 시작으로 2년에 1회 정도의 스타 셰프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어떤 캐릭터를 가진 셰프가 내한하고 그의 요리 스타일이 어떤지까지 꼼꼼히 따지는 고객이 많은 적은 없다”고 인터컨티넨탈 김현숙 주임은 말한다. “웹사이트 뉴스란 정도에 올려놓는 것이 다인데 어떻게들 알고 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많은 분이 온다. 이 기간에는 대략 15%정도 매출이 올라간다”고 전했다.

롯데호텔의 피에르 가니에르 갈라디너의 경우는 너무 많은 이들이 문의를 해 기존 80석에서 120석으로 좌석을 늘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기본적으로 음식을 맛보길 원하지만 그 이상을 원하는 고객들의 요구도 대단하다. 이에 발맞춰 W호텔은 1명에서 4명까지만 정원을 받는 프라이빗 쿠킹 클래스를 준비했고, 점심이나 디너 코스를 즐길 경우 음식이 나오기까지 요리를 준비하는 셰프의 모습을 생방송처럼 모니터를 연결해 보여주기도 한다. 파크 하얏트도 스테파노 갈로가 선보이는 ‘이탈리안 애프터눈 티’ 쿠킹 클래스를 마련해 좋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최근 ‘럭셔리’의 개념은 특별한 경험으로 정의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행사들은 한정된 기간 중 한정된 수의 고객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어 진정한 럭셔리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파크 하얏트의 김은경 차장은 덧붙였다.

특정 물건에서 어떤 호텔, 어떤 레스토랑,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한 ‘경험’으로 관점 자체가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누가 어떻게 해서 요리를 시작하고 어떤 아이디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요리인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그 맛과 경험을 모두 느끼며 즐기는 것이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고객층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주로 30대에서 40대의 남성이 주를 이룬다. 접대 위주보다는 동호회를 통해 지인들과 소규모로 참석하는 경우가 많고 혼자 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호텔 계획표 엿보기
올해 호텔들의 목표는 확실해 보인다. 식음파트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롯데호텔과 W호텔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롯데호텔이 큰 이슈를 몰고온 피에르 가니에르에 이어 꺼내 드는 다음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최연소 미슐린 스타 셰프 지안루카 르 프라슈니가 그 주인공이다. 6월 4일부터 8일까지 지안루카 르 프라슈니의 점심ㆍ저녁 메뉴를 선보이며 마지막 8일 저녁에는 다섯 종류의 이탈리아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갈라디너가 준비된다. 롯데호텔처럼 약 1년치 계획이 대략 잡혀 있는 W호텔과 파크 하얏트의 경우 하반기에 있을 셰프 프로모션에 대해 분명 기대할 만한 수준의 행사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단 어떤 셰프가 모습을 드러낼지는 아직은 비밀이라고.

신라호텔과 조선호텔은 중식파트에 심혈을 기울인다. 신라는 6월 14일부터 8일간 베이징오리구이 전문 레스토랑 ‘취안쥐더’의 최고 요리장이 내한해 직접 오리요리의 진수를 펼쳐 보일 예정이다. 조선호텔은 6월 11일부터 22일까지 웨스틴 도쿄의 중식당 ‘용천문’의 수석요리장 리윤팀을 초청해 광둥요리를 선보인다. 15일 진행되는 갈라디너에는 해산물을 이용한 그의 담백하고 독창적인 요리에 와인, 중국 술인 ‘공부가주’까지 곁들여진다. 지난 4월 프랑스 푸아그라 전문 조리장 장카이를 초청해 다채로운 푸아그라 요리를 선보였던 밀레니엄 힐튼은 9월에 호주 주방장을 초빙해 호주 음식축제를 열고, 10월에는 인도요리의 대가를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