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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 보호 구멍 뚫린 미국 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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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13면

법체계는 그 나라의 역사적ㆍ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법과 문화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한국어에는 프라이버시를 의미하는 마땅한 단어조차 없다. 개인을 강조하는 미국 문화와 상반되는, 한국의 가족지향적 문화의 한 단면인지 모른다. 미국 문화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고 한국 문화는 그렇지 않으니 법체계도 그런 면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소송을 하는 당사자나 변호사는 구할 수 있는 정보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전례가 될 수 있는 사건이 있으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법원에 가서 소장, 답변서, 준비서면, 증거, 법원의 각종 결정의 사본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론을 포함해 누구나 이런 자료를 구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송 상대방이 갖고 있는 서류도 개시(開示)절차(discovery)를 이용해 조사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를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소송 서류는 그 사건의 당사자에게만 공개된다. 단지 최종 판결문이 경우에 따라 공개될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판결문에서조차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당사자의 이름이 지워져 있다. 그리고 소송 상대방의 내부 서류는 아무리 치명적이라도 스스로 내놓지 않는 한 볼 수 없다.

최근 미국에서 사적인 정보를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듀크 대학의 라크로스 선수들이 돈을 주고 스트립 댄서를 파티에 불러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인데 전국적으로 크게 보도됐다. 고소인은 가난한 소수인종 여성이었고 선수들은 부유한 백인 대학생들이었다. 부와 권력을 남용해 소외계층 여성을 억압한 만큼 파장이 컸다. 고소인의 신상정보는 보호되었으나 피의자들의 이름은 널리 퍼져나갔다. 하지만 선수들은 DNA 검사 결과 무혐의로 드러났다. 검사가 유명세를 타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증거를 숨겼던 것 같다. 하지만 누명은 평생 학생들을 따라다닐 것이다.

미국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널려 있다. 이런 정보들은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미국 검찰은 ‘누가 밀고자인가(whosarat.com·사진)’라는 웹사이트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Rat는 속어로 밀고자를 의미한다). 이 사이트는 법원 제출 서류에서 공개된 정보를 검색해 제보자와 정부 요원의 이름과 신상정보를 보여준다. 5000명의 이름을 공개했는데 그중 400명은 정부 요원이다. 이런 정보는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각종 법원 제출 서류들, 예컨대 유죄협상(plea bargain) 문서 같은 데에 종종 등장한다. 이들의 이름이 공개되면 복수를 당할 수도 있어 매우 우려된다. 어느 교수는 “이 웹사이트 때문에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도 헌법상 보장된 언론자유의 보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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