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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용틀임 한다(1)「12억 만만디」발걸음 빨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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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2억 인구의 중국대륙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용틀임을 하기 시작했다.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등소평)이 주도하는 개방·개혁정책의 파도가 거대한 대륙은 물론 이웃 나라들까지 울렁거리게 하고있다. 10여년후인 200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을 따라잡고 다시 21세기 중반에는 선진국 대열로 도약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은 이념과 노선에 얽매여 있을 수만은 없다는 비장한 자세다. 여기에 중국정부는 물가자유화·토지제도 개혁·국영기업의 민영화등 과감한 제도개혁조치와 병행해 당·정·군 등의 근간까지 변화시키는 등 혁명적 조치들을 단행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올 상반기 12%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등 고도성장을 계속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중국의 현장을 특파원 취재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등평도 안돼요">
상해 남포대교에 설치된 관광용 엘리베이터 속에서였다. 한 관광객이 버튼을 잘못 누르는 바람에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도중에 내려가게 됐다.
엘리베이터 「여성복무원」은 그 관광객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아마 그만큼 교대시간이 늦어지게 된 모양이다.
『3층에서 내리면 안될까요?』기자는 짓궂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안돼요. 뎡샤오핑이 와도 안돼요』
엘리베이터 운행에 관한한 자신이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으니 그리 알라는 단호한 태도다. 여성복무원의 거리낌 없는 자기 주장, 거리의 인파속에서 넘치는 활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외국인들은 물론 중국인자신들도 중국은 변했으며, 그것도 최근 2∼3년동안에 엄청나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북경 서단의 번잡한 거리, 작은 만두집 앞으로 긴 행렬이 뻗쳐 있다. 구 소련·동유럽 국가들과 같은 물자부족 때문이 아니라 「인기 있는」집이기 때문이다.
한참을 기다려 맛본 고기만두는 예전의 「사회주의 만두」맛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방식으로 만들어 중국 전통의 만두맛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성냥도 못샀지만>
『78년 등소평의 개방·개혁정책이 도입될 때만 해도 성냥 하나 사는데 줄을 서야했던 사람들이 이제 주식을 사려고 다투고 있다』
북경의 한 시민은 자신도 믿기 어려운 변화로「잘 살게된 중국」을 외국기자에게 납득시키려고 애쓴다. 한벌에 2천∼3천위안 (한화 약30만∼35만원)의 서방 고급브랜드가 붙은 남자 양복, 비슷한 가격의 고급여성의류가 팔려나가고 현대식 고층건물들과 자동차시대를 예고하는 입체교차로….
그는 자신이 88년 서울을 처음 방문했을 때 경이의 세계에 들어선 듯 충격을 받았으나 지난해 다시 서울을 찾았을 때는 북경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개방·개혁 이전의 중국사회를 돌아보며 중국인들은 스스로 담사수(고여 썩은 물)에 비유한다. 여기에 개방·개혁의 돌이 던져져 일파만파의 변화와 함께 사회가 활수로 변화됐다는 것이다.
『기가 막히는 현실이었다. 중국이 이런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지도자들도 인정하고 있었다』
해외 견문이 많다는 한 중국인사는 중국 개방·개혁의 총설계사 등소평이 굳게 닫혔던 문호를 활짝 열기까지 중국이 얼마나 낙후됐으며 그런 만큼 오늘과 같은 변화는 암중모색과 진통 끝에 얻어진 귀결로 뒤바뀔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역설한다.
사회주의 건설 시기의 중국은 좌 아니면 우의 갈지(지)자 걸음을 되풀이한(주양극) 진전 없는 횡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주의 깊게 나아가 총괄(정리)하고 다시 한 걸음씩 나아가자』등소평이 비로소 방향과 속도를 제시한 셈이다.

<모택동 생사몰라>
89년 6·4천안문 사태를 겪은 뒤 개방·개혁정책의 일관된 경험을 토대로 등소평은 지난1월말 「남순강화」를 발표, 발걸음을 신속·과감하게 내디디기 시작했다.
80년대 초기 점으로 표현되던 개방·개혁의 실험장은 연안전면개방이라는 선으로 확대됐고, 이제「연선전략」에 따라 철도·도로·하천·접경선 등을 이용하면서 개방효과를 내륙 깊숙이까지 전파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개방전략은 한마디로 외국으로부터의 투자 및 기술에 의존하는 것으로 83년부터 91년까지 외국의 대중국 투자총액은 총4백98억달러로 집계된다.
이 투자액은 절반이 광동지역을 비롯 연안도시지역에 집중되었다.
미국·일본 등이 최근 서북지방 오지의 사원탐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광범한 내륙지방은 아직 미개발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89년 겨울 인공위성 발사기지가 있는 서북지방으로 출장갔던 한 과학자는 여행도중 있었던 현지인과의 충격적인 만남을 잊지 못하고 있다.
혹한속에서 속옷도 안입고 겉옷 하나로 몸을 두른채 이가 득실거리던 그 사람은 마오쩌둥 (모택동)이 아직 살아있는지, 문혁이 끝났는지를 물어 보더라는 것이다.

<7억이 궁핍생활>
중국 12억 인구 가운데 5억명은 문명권에, 나머지 7억명은 인간이하의 생활을 하는 산촌·궁촌에 사는 것으로 분류된다.
한 소장 경제학자는 2000년까지 성장률을 6%로 잡고서도 1인당 GNP가 8백달러를 넘어설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오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중국 경제발전의 중대한 과제로 천문학적인 인구탓이다.
중국의 국가는 이처럼 인구에 의해 과장되는 동시에 인구에 의해 역시 과소평가 되기도 한다.
한족을 제외하고도 55개의 민족, 그리고 한족도 지역에 따라 풍습·역사·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중국을 하나의 호칭으로 부르기엔 벅차다.
개방의 선도지인 광주시의 경우 월1천위안(한화 약15만원) 수입은 빈곤층으로 꼽힌다. 잘사는 축에 들려면 적어도 1만위안(약1백50만원) 벌이는 있어야 한다.
북경·상해지역은 1천∼1천5백위안이면 중산층이며 동북(만주) 오지에서는 부자 대열에 끼인다.
같은 지역에서도 빈부차가 확대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중국에서 최고소득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심천시의 주변지역에 형성되고 있는 빈민촌은 아시아 저개발국가들의 그것과 똑같다.
북경시도 대로변은 번화건물이 곳곳에 늘어서 있지만 서울의 명동에 해당되는 천안문광장, 왕부정 바로 뒤쪽거리는 가난에 찌든 사호동(골목)일색이다.
자력갱생과 대약진의 좌절을 겪었던 중국이 외자유치를 통한 개발전략을 선택한 것은 필연적이랄 수 있다.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외자유치가 필요하다.

<"중국가야 돈번다">
중국당국이 최근 사회주의체제하의 토지공유제를 유지하면서도 토지 사용전의 전매행위를 인정한 것은 개발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고육책이다.
대중국투자의 61%를 차지하는 홍콩인들 사이에 『돈을 벌기 위해 30년대엔 미국으로 갔지만 90년대엔 중국으로 가야한다는 유행어가 나온 것도 중국의 부동산 개방 때문이다.
산동성 청도시의 「개체호」(자영업자) 들이 모여 경영하던 생선횟집 거리가 몽땅 홍콩업자에게 불하된 것도 그 중의 한 예다.
생선횟집의 한 개체호는 신축의 경우 요즘 평당 ]백만위안(약 1억5천만원)을 호가한다. 중국인들은 돈 많은 의국인들을「라오와이」(노외)라고 부른다. 이 말 속에는 선망과 질시의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지난날 항공기 여행은 모두 라오와이의 차지였다.
그러나 이젠 국내 항공편은 1주일전 예약으로는 어느 노선이나 자리틀 잡을 수 없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사업으로, 관광으로 중국인들의 나들이가 철도·도로 뿐 아니라 항공편에까지 넘치고 있는 것이다.
12억 중국인이 이익을 따라 뛰기 시작하면 1백20억으로 증폭될 수도 있다. 이제 그 중국인들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글 전택원특파원 사진 신동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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