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유럽통합/타국도 화폐가치 조정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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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협」위협 세계 경제에 먹구름
유럽 각국이 통화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전례가 드문 조치를 취하고 나선 것은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크로나·리라화의 가치가 떨어져 자국 보유외환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이다. 이탈리아·스웨덴의 경우,과도한 재정적자와 높은 인플레 등 경제사정 악화에 따라 화폐가치가 계속 하락해 왔고 영국의 경우도 최근 수년간 계속된 긴축정책에 따라 인플레는 억제됐지만 경기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최근 파운드의 가치가 계속 떨어져 왔다. 이들 국가 화폐의 실질가치가 이처럼 하락하는데도 유럽환율조정장치(ERM)에 묶여 환율이 고정되자 이들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이 급격히 빠져나간 것이다. 이들 화폐의 약세는 자국 경제사정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독일이 금리를 높게 유지해 온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외환시장의 혼란은 국가간 경제교류의 모든 부문에 혼란을 일으키고 국제경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국내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외환시장의 혼란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모든 경제활동이 뒤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 모든 나라 정부들은 자국화폐 가치가 급격히 변동할때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거나 금리를 조정하고 그래도 안되면 평가절하나 평가절상 등의 조치를 취한다.
영국의 ERM 일시탈퇴는 영국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과 금리인상에도 파운드화가 계속 ERM이 정한 범위보다 더 떨어지자 취해진 것으로 파운드화의 평가절하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탈리아는 이미 영국이 취하고 있는 조치를 모두 실시했지만 효과가 없어 평가절하를 하게 된 것이고 스웨덴도 같은 과정을 밝고 있는 것.
한편 13일의 리라화 평가절하,16일의 파운드화 ERM 탈퇴는 EC통합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EC통합 과정은 회원국간 경제교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경제교류 장벽을 철폐(EC시장단일화)하고 최종적으로 화폐통합을 통해 회원국 모두를 단일경제권으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돼 왔다. 이 과정에서 유럽통화제도(EMS)는 화폐통합을 위한 발판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영국 존 메이저총리 정부는 이번 조치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영국은 지난 90년 마거릿 대처총리­메이저재무장관 내각 시절 EMS에 가입했었다. 당시 대처는 이를 못마땅 하게 생각했으나 메이저장관의 주장을 받아들인바 있다. 메이저는 마르크화에 의해 주도되는 ERM체제를 지렛대로 삼아 파운드화의 가치를 유지시킴으로써 국내 인플레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이 주장이 2년만에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현재 재무장관인 노먼 래먼트는 당시 메이저 밑에서 차관을 지내고 있었고 90년 메이저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재무장관으로 취임해 경제정책을 총괄해 왔다. 영국의 ERM 탈퇴가 발표되자 영국 신문들이 『래먼트는 끝났다』는 제목을 달고,정치분석가들은 메이저총리와 래먼트장관이 사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유럽 외환시장의 혼란이 계속 될 경우 선진국간 경제교류와 협력이 붕괴돼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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