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입원때 「혜택」절감/전국민의보 3년… 수기로 본 인식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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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월 8천원에 2백년분 수혜”/중병 퇴직공무원 “보험증을 신주처럼”/“익명의 이웃들이 베풀어준 사랑으로”
봉급생활자든 농어민이든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의료보험료.
국민의료보험이 77년 처음 도입된 뒤 한동안 봉급이 싹뚝 잘려나가는 것에 대해 또는 매달 날아드는 보험료 납부고지서에 강한 반발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의료보험연합회가 89년 7월 도입된 전국민의보 3주년을 맞아 실시한 「의료보험수기 현상공모」의 당선작(우수상 4편·장려상 5편)을 통해 그동안 의료보험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알아본다.
◇반발=아침 청소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 보니 남편이 흰 엽서 하나를 건네주었다. 1만7천5백원의 의료보험료 납입통지서였다. 88년 1월 당시,농기구 수리점을 하던 남편은 『아프면 내 돈내고 약사먹으면 됐지,무엇 때문에 매달 정부에 돈을 내. 미친짓이야』라며 통지서를 그자리에서 찢어버렸다. 그 후에도 통지서가 오면 코웃음 치며 휴지통으로 던져버렸다. 그러기를 1년여. 어느날 집안의 시숙뻘 되는 사람이 의료보험 조합에 다닌다면서 놀러왔다. 그는 『보험이란 옛어른들이 집집마다 벼나 쌀을 모아두었다가 어느 집에서 큰일을 당했을때 일을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 『보험료를 안내면 이사할때 퇴거가 안된다』며 의료보험에 동참할 것을 권했다. 마지못해 우리는 그동안 밀렸던 보험료를 여러차례에 나누어 내게 됐다. (우수상=김응숙·32·경북 영천군 대창면)
우리 가정에는 의료보험증이 없었다. 없었다기 보다는 그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편이 옳을듯 싶다. 90년까지 의료보험 대상자로 선정되어 부담 없이 치료를 받았으나 91년부터 지역보험으로 자동가입 되면서 우리 형편에 비해 너무 보험료 부담이 크다는 불만 때문에 한번도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고 의료보험증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장려상=신종복·49·경북 거창군 고제면)
◇고마운 의료보험=의료보험을 귀찮아 하던 주부 김응숙씨는 남편이 91년 5월 갑자기 결핵·폐기흉으로 장기간 입원 하면서 보험의 귀중함을 뼛속 깊이 느끼게 됐다. 엄청난 병원비중 3분의 1만 물어도 됐기 때문이다.
농민 신종복씨는 둘째딸 주희(20)가 91년 8월 만성신부전증으로 경북대병원에 입원,치료 받고 지역의료보험조합으로부터 약2천만원의 보험혜택을 톡톡히 보게된다. 그는 『한달 보험료가 8천원이므로 의료보험으로 2백8년분에 해당하는 혜택을 보았으며 한세대를 30년으로 잡는다면 7세대에 걸쳐 자손들에게 집을 지운 셈』이라며 『자칫하면 첨단의학이 「그림의 떡」이 될뻔 했다』고 했다.
개척교회 목사로 월 45만원의 사례비를 받는 최현주씨(38·우수상·전남 동광양시 마동 머릿돌침례교회)는 3월 여섯살난 둘째아들이 심장에 구멍이 뚫려있는 「심실중격결손증」으로 수술을 받고 진료비가 5백30여만원 나온데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 가운데 2백87만여원을 보험에서 부담해주었다. 그는 『보험혜택이 23년치 보험료·여섯달분 월급에 해당된다』며 그 혜택을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이 베풀어준 사랑」으로 표현했다.
또 권정희씨(우수상·42·부산 청룡동)는 공무원인 남편이 퇴직한 뒤 췌장염으로 수년간 고초를 겪는 동안 「봉급갈취증」으로 여겼던 의료보험증에 대한 생각을 바꿨고 『보험증을 신주처럼 모셔놓고 있다』고 했다.<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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