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가는 생명은 살렸건만…(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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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7월11일 국내 최초로 생체부분 간이식수술을 받은 홍석윤군(13개월)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던 2일. 이 수술을 집도했던 서울대의대 김수태교수(63·일반외과)는 기쁨과 함께 가슴 한쪽에 떠오르는 착찹함을 감추기 어려웠다.<관계기사 10면>
지난 88년 국내 최초의 간이식수술 성공에 이은 이번 생체부분 간이식수술 성공은 세계적인 명의로 자부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생체부분 간이식은 전체의 80%를 떼내도 곧 정상기능을 회복하는 간의 특성을 이용,살아있는 간의 일부를 떼내 간질환자에게 이식하는 방법. 뇌사가 인정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 방법이다.
때문에 이번 수술성공후 정년을 2년 앞둔 노교수는 하루 24시간을 연구와 실험에 매달려도 힘든줄 모를 정도로 의욕에 넘쳐있었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낸 인술의 힘을 새삼 깨달으며 가슴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석윤이의 퇴원을 며칠 앞두고부터 밤잠을 잘 이루지 못해왔다. 문제는 1천만원이 넘는 수술비 때문이었다. 홍군의 부모는 홍군에게 간의 일부를 제공했던 뇌사자 중국인교포 최모씨(여) 가족에게 이미 8백여만원의 돈을 지불한뒤라 통장은 바닥이 나있었다.
홍군의 부모는 결국 병원비를 못낸채 홍군을 가퇴원시켰다.
김 교수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병원에 치료비 면제를 조심스레 의뢰해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연초에 신청한 연구비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김 교수와 함께 수술에 참여했던 어느교수는 현재 서울대병원엔 홍군과 같은 수술을 받으면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어린이가 6∼7명이 더 있다고 말했다.
홍군을 떠나 보낸 김 교수는 가슴 한쪽 착찹한 마음을 묻어둔채 또 다시 연구실로 발길을 돌렸다.<문경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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