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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학교’ 편견 씻고 실패한 공교육 탈출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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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CBS에서 근무하는 오준석 PD는 2002년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목동으로 이사 왔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딸 연재를 특목고에 보내기 위해서다. 아이의 성적도 꽤 좋았고 부모의 뜻에 잘 따라오는 듯했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사소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따귀를 맞았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이대로 뒀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더군요. 아이가 갈수록 수척해지고, 내성적이 되는 게 마음 아팠습니다.”
그가 찾은 대안은 대안학교다. 딸아이는 2년간의 수소문 끝에 전남 담양군 한빛고를 선택했고 지금은 학교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한빛고에는 연재 말고도 대치동·목동에서 온 학생이 네 명이 더 있다.

대안학교가 ‘실패한 공교육’의 탈출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 각종 규제가 늘어나면서 공교육의 황폐화가 심해지자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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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자유, 높은 진학률 3박자
올해로 대안학교가 생긴 지 꼭 10년이 됐다. 1997년 세워진 대안학교 1호 경남 산청군 간디학교가 초중등교육법을 어긴 불법 학교로 규정돼 양희창 교장이 불구속 기소된 사건은 과거 속의 한 페이지가 돼버렸다. 10년 동안 대안학교가 양과 질 면에서 급성장해 지금은 110여 개로 늘었다. 간디자유학교 양희규 교장은 “전국 초·중·고 1만949개 중 대안학교는 아직 1%에 불과하지만 공교육에 염증을 느낀 중산층 학부모들의 관심이 커져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산성지고·양업고·원경고 등 초기의 대안학교들은 학습진도가 느리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학생, 왕따 당한 학생 등 정규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이 찾았다. 당시 외환위기로 가정 해체가 늘면서 이런 학생들이 많이 나왔고 대안학교도 그쪽에 집중했다.

그러던 게 3~4년 전부터 확 달라졌다. 계기는 분당 신도시 인근의 이우학교가 제공했다. 교육전문가와 명망가, 시민 등 10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이들이 120억원을 모았다. 박사 학위가 있는 교사 5명, 100개 넘는 다양한 교과목과 동아리 활동, 토론과 독서, 글쓰기 등을 내세우면서 새 바람을 일으켰다. 여기에다 간디학교가 서울대 입학생을 냈다는 소식이 가세하면서 대안학교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새로운 교육방식과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에다 대학 진학률까지 높자 전국의 중산층 학부모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간디학교·이우학교·세인고(전북 완주군)의 경쟁률이 최고 10대1까지 치솟았다. 이우학교 학부모의 90%는 중산층이며 지원자의 절반은 서울 강남에서 온다.
 
국제고 표방한 대안학교 등장

최근 학부모들의 관심을 끄는 대안학교는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국제학교다. 기독교계 대안학교인 등대국제학교(고양시 화정동), 한동국제학교(경북 포항시), 늘푸른국제학교(충북 청원군)가 그것이다. 미인가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용산·대전 국제학교 등 정규 국제학교와는 다르다. 이 학교들은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외국 유학이나 국내 대학 국제학부 진학을 목표로 한다. 커리큘럼도 국내 외국인 학교나 정규 국제학교와 비슷하다. 등대국제학교는 미국식 국제학교를 표방하며 미국 출판사의 교재를 사용한다. 늘푸른국제학교는 외국 유학을 겨냥해 수학·생물·화학 사전학점이수제(AP)를 운영한다. 한동국제학교는 토플을 정규 교과목에 넣어 배우게 한다. 기존의 대안학교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등대국제학교 학비는 연 960만원이다. 입학할 때 500만원의 기부금을 내야 한다. 늘푸른국제학교는 학기마다 725만~800만원의 후원금과 300만원의 기숙사비를 부담한다.
이런 점 때문에 이들 학교는 ‘귀족학교’로 불린다. 대안학교 제도를 이용해 엘리트 위주의 ‘변종 국제학교’를 운영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이종태 박사는 “이 학교들은 대안학교라기보다는 미국 유명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한 엘리트 학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점이 되레 학부모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달에 300통의 문의전화가 온다. 정규 국제학교로 보내고 싶지만 내국인이 갈 길은 없고 공교육에서는 수월성(秀越性) 교육을 시킬 수 없게 되자 그 대안으로 이런 학교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독수리기독중학교(성남 분당), 꿈의학교(충남 서산시)와 하나인학교(고양시) 등도 우수 학생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안 초등학교 관심 급증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동육아조합 형태로 어린이집을 세워 애를 함께 키우다 아예 대안 초등학교까지 세우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학교, 부천 산어린이학교, 대전 꽃피는학교 등이 그런 형태다. 몇 년 사이에 이런 초등학교가 유행처럼 번져 지금은 27개로 늘었다. 입시 지옥에 시달리는 중·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때부터 창의와 자율로 애를 키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안학교의 인기가 높아지자 ‘단기 코스’가 생겼다. 대안학교 격월간지 『민들레』 현병호 발행인이 만든 ‘산촌유학’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1~2년 정도 대안학교 체험을 하고 정규 학교로 복학하는 프로그램이다. 귀농운동본부·생태산촌만들기모임이 이번달 함양·상주·완주 등에 산촌유학센터를 만들었고 여기에서 30명의 도시 학생들이 대안학교를 체험하고 있다.

대안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어떨까. 서울시 대안교육센터가 지난해 11개 대안학교 학생 12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90명(72%)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 즐겁거나 매우 즐겁다’고 응답했다. 학교수업 내용이나 방식에 대해서는 64명(51.2%)이 ‘잘 맞거나 아주 잘 맞는다’고 했다.

교육의 질 잘 따져 선택해야
대안학교는 일반 학생들이 가는 학교에서부터 정규 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가는 곳까지 다양하다. 전체 정원이 10명 안팎인 데도 있고, 400명이 넘는 큰 데도 있다. 간디학교처럼 정부 인가를 받은 데가 29개로 가장 많은 유형에 속한다. 자연 속에 파묻힌 전원형 학교가 21개, 도시형이 16개, 위탁형이 22개, 탈북 청소년 학교가 6개 등으로 나뉜다. 위탁형은 부적응 학생을 받아 단기간 교육한 뒤 일반 학교로 돌려보내는 형태다.

대부분의 학교가 농사와 요리, 나무 심기, 전통 음악, 목공예, 옷 만들기, 환경보호 활동 등을 공통적으로 가르친다. 국어·영어·수학을 가르치지만 기본적인 선에서 그친다. 졸업생들은 대학 진학자들이 많고 음악이나 디자인, 시민단체 등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한다.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후죽순으로 생기지만 상당수가 재정난에 허덕인다. 쉽게 문을 닫기도 하고 이사를 다닌다. 어떤 데는 교사가 사비를 털어보지만 역부족이다. 그러다 보니 능력 있는 교사가 떠나고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학교 박복선 교장은 “대안학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며 교육의 질을 잘 따져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난을 학부모가 떠안기 때문에 학비 부담이 상당하다. 이우학교는 학비만 연간 480만원이 든다. 다른 학교들도 월 40만~50만원의 수업료를 내야 하고 입학할 때 기부금이나 예탁금으로 수백만원을 내는 경우가 많다. 수업료만큼 기숙사비도 내야 한다.

지원법이냐 규제법이냐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현재 비정규 학교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미인가 대안학교들이 일정 요건을 갖추면 인가를 받아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안학교 설립·운영 규정’을 내놨다.

이에 따라 현재 81개에 달하는 미인가 대안교육기관들이 학교 설립에 필요한 일정 요건만 갖추면 대안학교로 인가받을 수 있게 됐다. 이 규정은 올 상반기 안에 제정돼 시행될 예정이다.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과 이병석 사무관은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해 미인가 대안학교에 대해 본격적인 지원책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가를 받게 되면 재정 지원을 받는 대신 없던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인가 요건을 지금보다 완화한다고는 하지만 자칫 새 법이 대안교육의 생명인 자율성을 침해할 수도 있다. 때문에 대안학교 교장들은 지원은 받되 자유로운 교과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원진 기자

중앙SUNDAY 스페셜리포트 대안교육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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