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과 함께 한 '아름다운 걷기 동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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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경기도 가평 연인산. 해발 1000m가 넘는 정상에 오른 시각장애인 한찬수(42)씨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환한 얼굴로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냈다. 앞은 안 보이지만 그는 울창한 숲과 기암절벽이 펼치는 자연의 장관을 가슴으로 느꼈다.

한씨는 “시력을 잃은지 수년 만에 높은 산에 다시 올랐다”며 “예전에 한가로이 나무 숲을 거닐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날 산행은 29명의 시각장애인들과 이들의 눈이 되기를 자처한 29명 SC제일은행 직원들의 ‘아름다운 걷기동행’이었다.

◇걷기의 기쁨, 봉사의 보람=“왼쪽에 큰 돌이 있으니 오른쪽으로 붙어서 가세요.”

정한옥(49)씨는 한 손으로 정흥춘(48) 여신심사팀 부장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에 쥔 지팡이로 길을 찾으며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정 부장은 행여 정씨가 발을 헛딛을까 눈을 놓치 못한다. 이날 산행은 해발 1068m인 연인산 정상을 지나 우정봉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15km 코스. 일부러 경사가 완만한 길을 택했지만, 전날 비가 온 터라 길은 미끄러웠다.

특히 계곡물이 불어 있어 폭 4~5m의 계곡을 건너는 데도 30분 넘게 걸렸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김옥자(61)씨는 “옆에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줘 넘어질 걱정을 안했다”고 즐거워했다. 김대윤(48) 서초중앙지점장은 “혼자서 눈을 감고 걸어봤는데 10m도 못갔다”며 “장애인들에게 걷기의 기쁨을 선사한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재활프로그램으로 걷기가 최고=걷기행사는 오석근(50) 커뮤니케이션부장이 제안했다.

아름다운 숲을 걸어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얻고, 장애인을 직접 도우며 보람을 느껴보자는 취지다. 그는 2년 전부터 매일 아침 집근처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토요일에는 청계천에서 이들과 산책을 즐긴다.

오 부장은 “시각장애인들의 재활 프로그램 중 가장 좋은 게 걷기”라며 걷기 예찬론을 폈다. 유정하(61)씨는 “다른 운동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걷기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어 좋다”며 “걷다보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되고 대인 관계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ㆍ박유미 기자 hysoh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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