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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퇴임 후 머물 봉하마을 가 보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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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리워지는 곳. 그게 고향이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돌아가면 따스하게 맞아줄 것 같은 곳. 그게 고향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년 퇴임 후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돌아간다. 40여 가구 12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그는 1946년 여기서 태어나 결혼했고 아들을 낳았다. 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도 이곳에서다. 이 마을 안에서만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 노 대통령은 마을 주민들에게 돌아온 영웅일까, 반갑잖은 손님일까. 3일간 마을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김해 봉하마을 전경. 실선 안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 공사 현장. 김해=송봉근 기자


“옛날부터 무게라꼬는 잡을 줄 모르는 분이었지예.” 노 대통령이 태어나 일곱 살까지 살았다는 생가. 40여 년간 이 집에 거주한 안주인 김영자(62)씨에게 그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젊었을 때도 안 있십니꺼. 노 대통령께서 저녁 일찍이 묵고 잘 나다녔어예. 동네 어른들이 ‘무현이 어데 가노’ 하면 ‘양숙이 만나러 가요’ 솔직히 말했다 아입니꺼.” 김씨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참외를 썩둑썩둑 썰어왔다. 인심 좋은 걸 보니 역시 촌은 촌이다. 얘기는 계속됐다. “권양숙 여사가 참 착했어예.

한 번은 시어머니가 농사일 시킨 일꾼 새경을 좀 박하게 줬습니더. 그게 안타까워 시어머니 몰래 좀 더 줬다가 혼쭐이 났다 아입니꺼.”
생가를 나와 마을 공터의 관광안내센터를 찾았다. 노 대통령 당선 후 관광객이 줄을 잇자 생긴 곳이다. 평일 낮인데도 벌써 100여 명이 다녀갔다고 했다. 4년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김해시 문화관광 해설사 김민정씨를 만났다.

그는 “그래도 대통령 나고 마을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관광객이 넘치자 둑길이 왕복 2차로 도로로 포장됐고, 안 다니던 버스도 두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닌다”는 것이다. 요새는 주말이면 하루 700명이 오는 날도 있다고 했다. 관광 온 할아버지 한 분이 김씨에게 말을 걸었다. “말 좀 물읍시다, 근데 그쪽도 노씨요?” “아입니더, 아무 상관없는 남이라예.” 김씨는 이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고 했다.
마을에 하나뿐인 가게에 들어갔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았는데도 인근 주민 두 명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빈 잔 하나 들고 자리에 앉았다. 노 대통령 귀향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주민A “좋은 긴지, 나쁜 긴지….”
-주민B “봉하 사람들은 피해가 좀 안 있겠나. 개발이 안 되니까….”
-주민A “그래도 악담하는 사람은 없지. 대통령 태어난 동네라고 땅값 오를까 사둔 사람은 손해 좀 보겠지만.”
두 사람은 노 대통령이 오면 지역개발이 더뎌질까 우려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환경보전 쪽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름을 물었더니 “취해서 하는 소리 옮기지 마라”며 한사코 입을 닫았다.

지역 유지들 생각은 어떨까. 노 대통령의 소싯적 친구인 이재우(60) 진영농협조합장을 만났다. “대체로 10명 중 7∼8명은 개발 안 될까 걱정하는데 그거 잘못된 기라. 자연보호 하는 게 나중엔 재산이 될 겁니다. 노 대통령은 당선 전에 ‘통일되면 북한 지역이 더 살기 좋을 것’이라고 하더라고. 자연보호 하자는 거지.”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얘기를 꺼냈다. “나도 농협조합장이지만 FTA 반대하면 안 되는 거야. 조합원들은 물론 싫어하지. 그래도 우짜노, 문 걸어 잠가놓고 되겠나.” 이 조합장이 노 대통령 생가를 구경 가는 한 할머니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누군지 물었다. “저분 모르요? 선봉술(노 대통령 측근, 전 장수천 대표)씨 누나 아니요.” 대통령 주변 사람들에게 봉하마을은 여전히 성지(聖地)였다.

진영읍 사람들은 대통령 고향답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 요즘은 ‘대북 사업’까지 준비 중이다. 이 지역 특산품인 단감을 북한 주민에게 보내주겠다는 생각이다. 박영재(53) 진영읍번영회장은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잘 풀어나가고 계신데 우리도 도움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25일 평양을 방문했다.
이 지역 정치인들도 당적과 관계없이 노 대통령에게 우호적이다. 심지어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이 “노 대통령이 오면 지역 브랜드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며 환영할 정도다. 김해시의회 제경록 의원은 “노 대통령의 귀향에 긍정적인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열린우리당 소속이다. 최철국(김해을) 의원은 “대통령이 돌아왔다는 상징적인 의미만으로도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밀었던 지역 사람들도 여전히 그에게 호의적이다. 20여 년간 노 대통령을 지원했다는 노주현(47ㆍ물류업)씨는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계승한 후보가 있다면 대선이든 총선이든 가리지 않고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준(64)씨는 “정동영ㆍ김근태ㆍ천정배씨는 본인이 석고대죄해야지 대통령 탓을 하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경남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나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처럼 노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좋다”고 덧붙였다.

3일째 오후. 마을을 벗어나 서울로 향했다. 오는 길에 김해시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노 대통령의 귀향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냉소적인 답이 많았다. 아파트가 많은 삼계동에서 만난 마용한(64)씨는 “정치를 잘해야 좋게 봐줄 것 아니냐”며 “오든 말든 쳐다보기도 싫다”고 흥분했다. 봉하마을에서 노 대통령은 여전히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면 사정이 좀 달라지는 듯했다.

김해 봉하마을=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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