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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당 집권이 국익에 도움되려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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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27면

장훈 중앙대 교수ㆍ정치학

2007년 대선 레이스에서 한나라당의 독주가 수개월째 지속되면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 하나를 잊고 있다. 모든 관심이 이명박ㆍ박근혜 두 후보의 치열한 다툼과 지지부진한 범여권의 진로에 쏠린 가운데 우리는 투표하기 전에 마쳐야 하는 숙제 하나를 미뤄 두고 있다. 만일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한다면, 이것이 과연 우리 사회의 보수적 재편 혹은 새로운 질서의 구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충분하게 검토되지 않고 있다.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지난 10년 사이 우리 사회는 진보혁명을 경험해 왔다. 우리 사회 안에 뿌리 깊던 권위주의ㆍ엄숙주의ㆍ기득권은 해체되었다. 또한 정경분리의 햇볕정책은 북한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더 많이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이명박 혹은 박근혜 후보의 집권은 시장경제, 남북관계, 사회질서의 측면에서 폭넓고 깊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보수적 질서 재편은 두 개의 걸림돌을 넘어서야만 가능하다. 첫째 장애물은 보수정치의 기형적인 구조이다. 보수 성향의 두 후보는 지금 매우 높은 지지를 누리고 있지만, 사실 한국 보수정치의 인프라는 여전히 취약하다. 이념과 정책을 만들어내는 싱크탱크는 빈곤하고, 정책과 아이디어를 전파할 네트워크는 부실하다. 또한 현실감각과 이론을 겸비한 정책형 지식인의 헌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같은 부실한 기초체력은 1980년대 보수 혁명을 주도했던 미국 공화당의 재건 프로젝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1960~70년대 이른바 진보의 시대에 눌려 있던 미국의 보수 세력은 싱크탱크와 정책 네트워크의 구축을 통해 부활했다. 수십만 명이 내는 소액 기부금을 통해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거대한 싱크탱크가 성장했다. 여기에 이론과 정책의 결합을 꿈꾸었던 정책형 지식인들이 정책 콘텐트를 왕성하게 제공했다. 전략문제연구소(CSIS)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브레진스키와 미국외교협회(CFR)를 기반으로 영역을 넓혀간 키신저는 이른바 정책형 지식인의 1세대 주자들이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정책안은 다양한 잡지, 정책모임, 청년 아카데미 등을 통해 미국 사회 구석구석으로 전파되었다. 다시 말해 정당과 정책형 지식인, 정책 네트워크, 시민의 참여와 지원이 빚어내는 유기적인 연결구조가 레이건 혁명의 기반이었던 것이다.

둘째 걸림돌은 한나라당의 정치 지도자, 정치 엘리트, 일반 유권자 사이의 편중된 연계구조다. 요즘 이명박ㆍ박근혜 두 후보가 정책적으로, 정치적으로 주로 의존하는 집단은 전ㆍ현직 의원들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기존의 정당정치, 여의도정치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인물의 충원은 아직까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모든 개혁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기성의 질서, 이해관계에 대한 타파로부터 시작된다는 데 있다. 1980년대에 미국 정치의 보수적 재편을 주도했던 레이건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취임식 때까지 워싱턴에 오지 않고 고향 캘리포니아에 그대로 머물렀다. 정권 인수를 위한 모든 준비는 캘리포니아에서 진행되었다. 다시 말해 공화당의 유력자들로부터 그다지 큰 신세를 진 바 없는 아웃사이더 당선자였던 레이건은 워싱턴의 기득권 세력(Washington Establishment)과도 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따라서 레이건 혁명은 워싱턴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인 캘리포니아 사단이 주도했다.

요약하자면 한나라당이 오늘날 안고 있는 최대의 과제는 경선 다툼이 아니다. 문제는 정책 인프라의 확대와 개방적 인재 등용과 같은 구조적인 것이다. 이 같은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맞이하는 집권은 단지 5년간의 해프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정치는 단순한 권력싸움이 아니다. 정치는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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