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28. 1972 일본오픈 <3>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일본의 골프 영웅 오자키. [중앙포토]

승부는 4라운드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려지지 않았다.

내가 6번 홀에서 보기를 범했고, 공동선두였던 태국의 온샴도 보기를 했다. 그러나 나는 8번 홀에서 곧바로 버디를 잡아 1위가 됐다. 반면 온샴은 다시 보기를 범하면서 3위로 밀려났고 점보 오자키(오자키 마사시)가 2위로 나를 바짝 추격했다.

그 뒤부터 나와 오자키는 피 말리는 1타차 접전을 벌였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와 오자키.온샴 모두 파 행진을 했다. 14번 파5홀에서 내가 버디를 잡았을 때 오자키도 똑같이 버디를 잡았다. 보기를 범할 위기를 한두 차례 맞았지만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이를 넘겼다. 우승하고야 말겠다는 내 정신력이 체증으로 인한 최악의 컨디션을 이겨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괴물' 오자키는 홀마다 300야드 안팎의 장타를 터뜨리면서 힘으로 나를 제압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두둑한 배짱으로 맞섰다.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일본 갤러리가 야유를 하면 나는 씩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아우성치던 일본 갤러리는 곧 조용해졌다. 라운드 도중 오자키와 나는 간간이 이야기를 하면서 필드를 걸었다.

어느덧 마지막 18번 홀이 다가왔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홀은 540야드 파5였다.

내 샷의 거리로는 두 번 만에 공을 그린에 올리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지만 오자키는 할 수 있었다.

드라이버샷에 이어 세컨드샷을 안전하게 치고 나서 나는 옆에 있던 오자키의 어깨를 툭 치면서 "자네 오늘 여기서 투온 못해서 버디를 잡지 못한다면 나한테 진다"고 말했다. 이에 오자키는 "하이, 하이, 알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한국선수인 내게도 깍듯이 선배 대접을 해줬다.

오자키의 남은 거리는 240야드 정도였다. 그는 한참이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린 바로 앞에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어 우드샷의 방향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벙커에 빠질 것이고, 그러면 버디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자키는 역시 승부사였다. 몇 번인지 기억 나지는 않지만 그는 우드를 잡았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치솟은 그의 볼이 그만 벙커에 처박혔다. '골프의 신'이 내 손을 들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오자키가 엄청난 장타를 때린 것은 큰 키를 활용한 스윙 아크가 컸고, 헤드 스피드도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스윙 아크가 크면 원심력 때문에 헤드 스피드가 빨라진다. 긴 클럽을 사용할 경우 볼이 멀리 나가는 이유다. 골프 스윙에서 코킹을 강조하는 것도 임팩트 때 클럽의 헤드 스피드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다. 샷의 거리는 클럽 헤드가 얼마나 빠르냐에 달려 있다. 일단 스윙 아크를 크게 해 보시라. 그러면 비거리가 늘어날 것이다.

한장상 KPGA 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