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침략 불법확인소 낸 지익표변호사(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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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일합방은 원천적 무효”/수탈·분단 책임묻는 민족소송 /“뻔뻔한 발뺌 심판” 29일 첫 재판
한일간 과거사를 법적으로 정리해보는 최초의 재판이 오는 29일 오전 10시 일본 동경지방재판소에서 열릴 예정이다. 대일 민간법률구조회 등이 주축이 돼 소송에 나선 「일제침략으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존재 확인 등 청구사건」이 그것이다. 소송을 주도하는 지익표회장(66·변호사)을 만났다.
­왜 소송을 내게 됐습니까.
▲우리는 일제침략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까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소송은 일본이 「가해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번 청구사건을 「총체적 민속소송」이라고 봅니다.
­소송의 골자는 무엇입니까.
▲소위 한일합방조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주력할 것입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일제의 민족탄압과 수탈,남북분단에 대한 일본의 책임도 묻겠습니다.
­일본은 한일합방조약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당시에는 유효했으나 현재는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효라는 주장은 침략사실이 없었고,따라서 배상도 있을 수 없다는 논리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현재 무효라는 주장은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협정조약 제2조의 「1910년 이전의 모든 조약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구절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이 조약으로 한일간의 과거사는 완전히 매듭됐으니 더 거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일합방조약과 한일협정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요.
▲한일합방조약은 강박에 의해 체결됐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확신합니다. 국제법(「조약법에 관한 빈협약」 제52조)에도 이 사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일협정의 경우 국민감정에 반해 처리된 부분이 없지 않으나 조약자체는 유효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조약이 우리 국민 개개인의 일본 혹은 일본인에 대한 청구권 포기까지 규정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일본정부의 경우 「일·소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패전후 시베리아에 잔류한 일본인의 대소 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잖습니까.
­남북분단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입증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딱부러지는 자료를 통해 입증하기는 어려우나 일제의 침략이전에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패퇴한후 한반도는 둘로 나뉘었습니다. 일제지배가 분단을 불러왔다는 것은 자료가 아니더라도 분명한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남북분단에 대한 책임소재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기술이전을 요구하는 것을 구걸로 보는 시각은 단견입니다. 일제지배가 없었다면 우리가 일본의 경제력을 못따라갈 이유도,기술이전을 요구할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국제적으로 국가차원의 침략행위·불법행위를 놓고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드문 것 같은데요.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침략행위 등을 솔직히 인정하고 또 뉘우치고 있습니다. 또 소송이 필요없을 만큼 인도적 견지에서 자발적으로 충분히 배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잘못을 저지르고도 안했다고 뻔뻔스럽게 발뺌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승소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로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일본 사법부의 최소의 양심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1심에서 패소할 경우 대법원까지라도 간다는 생각입니다. 정의를 떠난 개인 혹은 민족은 언젠가는 심판을 받습니다. 다행히 최근 일본 내부에서도 전후처리가 배상과 사죄를 회피하고 정치적으로 타결됐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일본에 한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산 사람으로 한이 없다면 이상하지요(지 회장은 여수공립수산학교 재학중인 18세때 「독서회사건」으로 일경에 구속된 바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한보다는 새삼 일제의 만행에 놀랄 계기가 있었지요. 지난 89년 사할린동포들의 일본정부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맡기 시작하면서 대일 소송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법조인으로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대 문제는 물론 사이판·남양군도 등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징용군인·군속들에 대한 얘기는 정말 기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일제 징용으로 희생된 40여만명의 한국인중 유골이 송환된 것은 1만구도 안됩니다. 일본은 자국국민과 민간인희생자 2백40여만명중 1백22만구의 유골을 이미 발굴했어요. 대한 사죄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지요.
전남 완도출신의 지 회장은 일제치하에서 희생된 독립운동가·군인·군속 등의 후손과 유가족을 위해 앞으로도 대일관계 소송을 적극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유신시절 인권변호사로도 활약했으며 지난 85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타기도 한 지 회장은 침략청산촉구 한민족회와 사할린동포 법률구조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김창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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