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右)과 윤준상 6단의 국수전 도전기 모습. 여기서 3대1로 이겨 국수가 된 윤준상이 25일 이창호의 마지막 타이틀인 왕위에 도전한다. 왕위 대 국수의 대결이 된 이번 도전기는 이창호 9단에겐 ‘12연패 달성’이냐, ‘무관 전락’ 이냐의 중대 기로다.
이창호 9단은 최근 알려진 대로 건강이 좋지 않아 컨디션이 바닥이지만 명국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왕위전 12연패를 꼭 이루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 9단이 중국에 오면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동생 영호씨도 베이징(北京)에서 달려왔다.
이번 왕위전은 이창호 9단에겐 그의 20년 승부 인생을 통해 최대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9단은 국내 기전에서 3관왕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왕위 외에도 국수, 10단, 전자랜드배 등 4관왕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10단이 안조영 9단에게 넘어가고, 국수는 윤준상 6단에게 넘어갔다. 선수권전인 전자랜드배는 이미 새로운 시즌에 들어가 이창호의 우승컵은 시한이 지났다.
따라서 이창호는 이번 도전기에서 왕위마저 잃어버리면 14세 때인 1989년 첫 우승컵을 따낸 이래 최초로 '무관'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창호 9단은 그러나 담담한 모습이다. "승부는 평생의 업이다. 전력을 다할 뿐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지난 10여 년간 세계 바둑을 한 손에 움켜쥐었던 정복자의 위엄과 함께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자 하는 장인의 깨달음이 묻어 나온다. 이와 달리 20세의 윤준상은 "기회가 왔을 때 잡겠다"라는 한마디로 승부 의지를 거리낌없이 내비치고 있다. 그는 이창호 바둑의 장점과 단점을 '기다림'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9단의 바둑은 기다림의 바둑이다. 기다림은 체력이 좋고 계산력이 발군일 때는 장점이 되지만 컨디션이 나쁠 때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창호 9단이 프로에 입단할 때(86년)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윤준상이지만 이처럼 자신감에 넘치는 데다 바둑에 새롭게 눈을 뜨며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어 컨디션이 저하된 이창호 9단에겐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로 비친다. 그러나 이창호는 누가 뭐래도 바둑의 전설이며 신화다. 벼랑에 몰릴 때마다 새롭고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온 '바둑왕' 이창호 9단이 강한 도전자 윤준상과의 승부를 어떻게 풀어갈지 두고 볼 일이다. 두 기사의 상대 전적은 3승3패로 팽팽하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