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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열되는 러시아 권력투쟁/옐친 측근들 조차 여러 갈래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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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복잡하게 얽혀서 집단갈등 양상/경제개혁 성과없자 급진파 궁지
최근 러시아 지도부내에서 권력투쟁이 점차 가열되면서 개혁파 주요 인사들의 퇴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를 비롯한 러시아 주요 언론은 최근들어 보리스 옐친대통령 측근들의 권력투쟁이 격화,우려할만한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권력투쟁의 양상은 매우 복잡하다.
경제개혁 추진방향을 둘러싼 급진파와 보수파의 갈등에서부터 쿠릴열도 4개섬의 일본 반환문제,대외정책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정책지원국 위치로 전락한 국가위신을 둘러싼 애국주의 세력들과 현실론자들간의 투쟁 등이 뒤섞여 일종의 집단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러시아 지도부의 세력갈등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구공산 수호세력과 민주세력간 갈등을 들 수 있다.
지난해 8월 쿠데타실패후 당이 공식 해체되긴 했으나 구공산당 계열의 수구세력은 지방과 중앙에 여전히 막강한 세력기반을 갖고 있다.
이들은 개혁파의 경제개혁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실업·경기침체·국가위신실추 등 부작용만을 보이는 현실을 지적,파업·대중시위 등을 통해 옐친정권에 저항하고 있다.
알렉산드로 루츠코이부총령,아르카디 볼스키시민동맹의장,게오르기 히자부총리 등이 추구하는 정책노선은 비록 그들이 민주진영에 속해 있으나 수구·보수세력의 주장에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때로 개혁노선에 1백% 동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쿠릴열도 4개섬 반환문제,급진개혁론자들의 과도한 긴축정책,흑해함대 분할문제,체첸­잉구슈 자치공문제,타타르공화국 독립문제 등에 있어서는 애국·보수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현재 크렘린궁 권력배분을 노선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예고르 가이다르 총리대행,안드레이 코지레프외무장관과 같은 테그너크랫형 인사들이다.
이들은 현 개혁정책의 양대기둥으로 경제와 외교에 있어 친미·친유럽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의 정책은 전통적인 러시아의 정책과 크게 다르며 그만큼 일반 대중과 기존 관료세력들,학자들의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두번째는 겐나디 부르블리스,유리 스코코프 등 옐친과 친분관계를 맺고 있는 친위그룹이다.
이들은 옐친의 개인적인 인기를 기반으로 러시아의 헌법개정,미국식 대통령 중심제로의 제도개혁 등을 끊임없이 추구해 보수파 관료들과 의회로부터 신랄한 공격을 받고 있다.
이들은 현 가이다르 내각이 물러날 것에 대비해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초헌법적인 「비상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셋째는 지난 6월의 인민대의원대회의 결과 가이다르 내각에 영입된 게오르기 히자,블라디미르 슈메이코 등 의회내 산업동맹 계열이다.
이들은 특히 의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이다르식 경제정책에 전면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넷째는 루츠코이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민중주의적 세력들이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산업동맹파,또는 테크너크랫파와 연합하기도 한다. 최근의 양상은 이들 파벌중 옐친과 의기투합해 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가이다르·코지레프 등 테크너크랫형 개혁파들이 다른 파벌의 공격에 밀려 궁지에 처해있는 듯이 보인다.
특히 코지레프의 경우 일본과의 쿠릴열도 문제,세르비아·이라크에 대한 제재에 무조건 동참한 문제,외무부내의 자파 세력양성을 위한 편파인사 문제 등이 겹쳐 사면초가의 입장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옐친의 일본방문 준비를 위해 미하일 폴토라닌부총리가 방일하면서 코지레프의 사임설까지 나돌고 있다.
모스크바의 분석가들은 코지레프뿐 아니라 크렘린내의 실무형 민주개혁론자들의 운명은 시간문제라고 말하고 있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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