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할아버지」 마을도서관 인기|-서울쌍문3동 사무소에 최태안씨 설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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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고희를 눈앞에 둔 반백의 할아버지가 사비를 털어 마을 문고를 개설, 손주뻘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책을 빌려주며 선도활동에 정열을 쏟고있어 훈훈한 화제가 되고있다.
서울쌍문동 「문고할아버지」 최태안씨(66·쌍문3동141의24).
지난 90년7월부터 사비 6백만원을 털어 쌍문3동사무소 2층에 5평남짓한 문고를 개설, 어린이들이 독서에 취미를 갖도록 유도하고 문고를 공부방으로 개방,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지역사회훈장」 역할을 도맡고있다.
『안중근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아난다」며 감옥에서도 책을 읽지 않았습니까.』
최씨는 『오락실·만화방등을 돌며 시간을 허비하는 어린이들이 독서에 재미를 느끼도록 유도하기위해 문고를 개설했다』고 말했다.
이 문고의 보유장서는 위인전기·소설·역사서·수필·시집·철학서등 총5천1백여권. 이중 2천여권은 최씨가 청계천일대 헌책방을 발이 부르트도록 누비며 사들였다. 나머지는 주민들의 기증본. 하루평균 50여명이 1백20여권의 책을 빌려간다. 이 문고는 회원으로 가입한 주민4백여명이 가끔씩 내는 5천∼1만원씩의 성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자진해서 성금을 내는 주민은 많지않다.
서울이 고향인 최씨가 사회봉사활동을 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전쟁직후에 급증, 사회의 냉대를 받아오던 혼혈아들을 돕기위해 63년에는 경기도의정부에 혼혈아전용교육및 보호시설인 「국제아동학교」를 설립, 운영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뒤 미군 수송부 정비공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 3백50여만원을 전액투자, 학교를 세운 것이다. 당시 나이는 33세.
개교초기에는 10여명에 그쳤던 학생들이 2개월여만에 3백여명으로 늘어나 식비등 운영자금 마련에 애를 먹었다는 것이 최씨의 회고.
64년 인천시자립갱생동지회장으로 위촉되면서 부랑인 전용기숙사를 지어 부랑인들에게 직업교육등을 시켜 사회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국제아동학교와 부랑인 기숙사는 「교육환경이 나빠진다」며 철거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집단진정에 밀려 강제 철거됐다. 이때부터 최씨는 빈털터리가 돼 혜화동 집을 팔아 빚잔치를 한후 전세방으로 옮겨 아내 조금원씨(56)의 행상수입으로 생계를 꾸려야했다.
그러나 이같은 가난속에서도 89년에는 아내가 행상으로 모은돈 4백50여만원을 털어 2·5t트럭을 구입, 폐품수집운동으로 얻은 수익금 50만원을 영세민장학금으로 선뜻 내놓기도했다. 현재는 2천만원짜리 전세집에서 살며 아내 조씨의 행상수입과 두딸의 봉급으로 어렵게 살고있지만 연말이면 고아원·탁아소등을 방문, 작은 선물이라도 전달하는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최씨는 『쌍문문고를 30평가량으로 늘려 부녀자 및 청소년상담·주부교실등 다채로운 사회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김기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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