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강행」 고심하는 여당/여야 극한대치… 격돌만 남은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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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장단 소극적… 수적으로도 약세/야선 육탄저지때 여론 악화 우려
국회는 한치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가운데 여야가 끝모를 극한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한쪽은 상임위원장 선출·지자제법의 날치기 기회만 노리고 있고 다른 한쪽은 결사항전의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여야는 모두 자신들의 전략·전술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어 날치기냐,저지냐의 장래는 극히 불투명하다.
○…민자당의 가장 큰 고민은 13대 후반의 거여소야시절처럼 의석수의 압도적 우위가 아니어서 역대 여느 여당보다 날치기의 기본요건이 허약하다는데 있다.
3당합당후 의석 3분의 2이상이었을 때도 수차례에 걸친 「날치기」를 하면서 야당의 집요한 반격에 늘 애를 먹었다. 의석수 3대 1도 날치기에는 벅찼다. 그러나 민자당은 현재 1백58석밖에 되지 않아 97석의 민주당과 비교하면 1.53대 1 정도의 우위에 서있다. 변칙처리를 하기에는 절대수가 부족하고 두배이상 힘들게 되어있다. 여기에 32석의 국민당도 7일 민주당과 지자제법 통과에 공동으로 실력저지 한다는 입장이어서 상황은 더욱 어렵게 됐다.
민자당은 이같은 수적 고민외에도 강행처리에 사회를 맡아줘야할 박준규국회의장과 황낙주부의장이 시종 소극적 입장이어서 딱하게 됐다. 몇번의 날치기 처리로 인해 야당의 격렬한 비난을 받았던 박 의장은 이제 원로정치인으로서 명예를 남기고 싶어하고,황 부의장도 대선후 있을 정계개편 등을 고려해 날치기의 총대를 메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다. 게다가 명분있는 탈당의 기회만 엿보고 있는 이종찬 의원이 거꾸로 야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성명을 냈고,내심 단체장선거의 연내실시에 찬성하는 의원도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있다.
또 심명보의원 등 도저히 등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와병중인 의원도 있어 표결에 참가하지 않는 사회자(의장) 등을 빼면 물리적으로 민자당이 과반수(150명)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김영삼대표의 굳은 결심에 따라 민자당은 원구성과 지방자치법을 내주까지는 반드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우선은 본회의장에서의 지구전을 통해 야당의 지나친 저지실태를 국민에게 알린 다음 12명의 무소속의원이라도 지원을 끌어내려 안간힘이다.
김용태총무는 『한 1주일 명분없는 대치상태를 계속하다 보면 민주당도 제풀에 지쳐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애써 낙관하고 있다. 매일 여야가 실력대결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양비론이 비등할때 전격처리해 여론의 비난을 나눠 받겠다는 것이다.
원구성의 경우 최소한 10개 상임위원장에 대한 무기명 비밀투표를 해야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를 취하면 2∼3시간 걸린다. 일반법안처럼 전격 「날치기」 처리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편법이 모색되고 있다. 회의장내에 있는 2개의 투표소를 아예 20개쯤 늘려 야당의 공격력을 분산시키고 기표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회의장밖에서 개별적으로 나눠준 투표용지에 미리 기표케 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이같은 구차한 짓을 하지 않으려면 의장이 직권으로 경호권을 발동해 경찰을 동원하는 방법이 있으나 박 의장이 이를 수락할지 의문이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의 전격처리를 위해서는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아니한 안건에 대해 제안자가 그 취지를(본회의에) 설명해야 한다」는 국회법 86조의 단서조항을 확대해석해 의장이 이 법안을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위원회가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 것이므로 상임위 자체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위법시비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정 상임위를 구성할 수 없다면 가칭 「지자제관련 특위」만 먼저 구성해 이 특위를 통해 법안을 심사·처리케 하는 방법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악착스레 덤비면 민자당의 날치기 통과를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다만 육탄저지하는 과정이 국민들에게 「극한투쟁」이나 구태로 보여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여야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상태를 피했으면 한다. 그래서 최대한 완력을 쓰지않고 신사적으로 응수하는 채 하면서 민자당을 골병들게하고 김영삼대표의 리더십과 이미지에 흠집내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때문에 민주당은 실제 가능성여부는 접어두고 민자당이 날마다를 D데이로 잡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여기에 명민하게 대처하고 있음을 선전한다.
총무단은 13대 거여소야때 의장단(박준규의장·김재광부의장)을 막지 못했거나,따돌림을 당해 날치기를 성공시켜 준 전례를 떠올리며 박 의장과 황낙주부의장의 일거수 일투족을 밀착방어하고 있다. 의장실·부의장실에서 꼼짝 못하게 준 감금(?)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사람을 붙잡아두는데 30명의 의원을 저지조로 배치했다. 이와 함께 민자당이 상임위구성을 생략한채 바로 지자제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거나,지자제법 특위를 만들기위해 국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에 대비,법률논쟁의 채비도 마쳤다.
이철 총무는 8일 아침 의원들에게 과거 공화당의 3선개헌때처럼 토요일 밤과 일요일 새벽을 이용해 날치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의원들의 전의를 불지르고 경각심을 촉구하는 심리전을 연신 구사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종찬의원이 단체장선거 실시를 내걸고 전선이탈을 하고 있는 점을 낭보로 간주,민자당이 13대에 비해 일사분란함도 부족할뿐 아니라 전열이 쉽게 흩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박보균·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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