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얼룩진 스페인이민|태권도로 「한국」 심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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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스페인 한인사회가 애환·굴절로 점철된 단계를 뛰어넘어 안정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안정단계에 접어들기까지에는 스페인한인사회의 목숨을 건 투쟁과 눈물겨운 사연으로 얼룩졌고 또 이를 극복해야만 했다.
스페인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스페인의 이민사(사)가 정확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대략 60년대 초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스페인에 살고있는 한인교포수는 약 2천5백명선. 마드리드·바르셀로나에 각각 5백여명씩 살고 있고 한국원양어업의 전진기지였던 라스팔마스에 약 1천3백명이 몰려있다.
그러나 스페인 한인사회는 초창기 태권도사범들에 의해 형성됐다.
태권도 사범들이 전세계에 많이 퍼져있지만 스페인의 경우는 이주동기·정착과정이 다른 나라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60년대 초반 서독·아르헨티나로 이민갔던 광부들이나 태권도 사범들이 생활이 여의치 못해 새생활을 찾아 하나둘씩 스페인으로 이주해왔고, 이들이 점차 자리를 잡게 되면서 당시 고국에 있던 가족·친지, 그리고 동료사범들을 불러들인 것이 오늘날 스페인 한인사회의 근간이 되고있다.
어느곳이나 마찬가지로 초기엔 형언할수 없는 수모·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스페인이 예나 지금이나 이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태권도사범들은 노동계약을 맺어 들어와야 만 했다. 더욱이 태권도가 당시만해도 스페인에 거의 알려지지않아 도장을 차리기가 힘들었고 설사 도장을 차린다해도 태권도보다 훨씬 먼저 들어와 터를닦은 유도·가라테의 심한 견제를 받아야 했다.
그러던 것이 태권도가 파괴력면에서 유도·가라테를 능가한다는 사실이 스페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기시작, 태권도장이 급속도로 늘어나게 된것. 이제는 태권도장을 차리면 삽시간에 수강생들이 늘어나 사범으로서의 명예·부를 한꺼번에 거머쥘수 있게 된것도 이때부터다. 바르셀로나에 거주하고 있는 전영태(전영대·55)씨는 태권도사범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 경기도파주가 고향인 그는 처음에 서독에 광부로 진출했다가 67년 스페인으로 이주, 현재 바르셀로나·발렌시아에 8개의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엔 20억원까리 바르셀로나시내의 상가를 매입, 월세수입만도 월평균 2백50만페세타(한화 약2천만원)에 이른다. 태권도장이 한창 잘될 때인 70년대중반 그가 한국에서 불러들인 사범만도 40명이나 될 정도. 전씨 수준엔 못미치지만 태권도사범의 가족 대부분은 이곳 월평균소득의 3배가량의 고소득층으로 가정마다 교외에 멋진 별장을 소유하고 있을만큼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처음에는 말도 잘 안 통하고 문화장벽도 높았지만 해소된지 오래다. 삶의 여유가 생긴 교민들은 지난해에 총영사관의 도움을 얻어 바르셀로나 한인학교를 설립, 우려했던 2세교육문제에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고 있다. 지금 교민사회의 고민거리가 있다면 한국사범 밑에서 배우고 나간 현지출신 유단자들이 속속 도장을 개설해 경쟁자가 된 것이다.
【바르셀로나=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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