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패권경쟁과 동아시아의 대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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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27면

1989년의 천안문 사건과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와해 이후 중국의 미래에 대한 주된 담론으로 등장했던 ‘중국 붕괴론’이 최근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연평균 10%를 웃도는 경제성장과 함께 ‘평화로운 발전’(和平發展) 및 ‘조화로운 세계’(和諧世界)라는 대외전략의 수행을 통해 중국이 국제정치의 명실상부한 하나의 축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평화전략과 ‘소프트파워’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향후 중국의 ‘부상’이 가져올 국제정치의 구조와 규범에 대한 충격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적지 않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의 전 지구적 영향력을 대체할 가능성은 작다는 견해, 중국이 결국에는 미국과의 패권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관점, 그리고 중국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중국의 ‘부상’ 자체가 미국의 전략적 운신의 폭을 줄여 미·중 간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의문의 여지 없이 이미 전 지구적 현상이지만 그 핵심적 전략 방정식은 우선 동아시아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다자협력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의 영합적(zero-sum) 양자관계의 상호작용이 가장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동아시아며, 미국의 (준)동맹 유지에 대한 노력과 중국의 파트너십 구축의 모색이 충돌하고 있는 곳 또한 바로 이 지역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여러 국가가 중국의 ‘부상’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중국의 커가는 경제를 적극 활용코자 하는 관여/개입(engagement)의 방식을 대체로 공유하면서도 크게 3개의 유형으로 나뉘어 일정한 편차를 노정하고 있다. 우선 중국의 ‘부상’에 대한 위협 인식을 크게 가지고 있어 미국과의 전략적 유대 강화를 통한 ‘세력균형’(balancing)을 추구하는 국가들이 있는데 이에는 대만ㆍ일본ㆍ호주 및 몽골이 속한다. 그 반대편에는 중국의 ‘부상’에 ‘편승’(bandwagoning)하려는 국가들로 미얀마ㆍ북한ㆍ캄보디아와 라오스가 이에 포함된다.

나머지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개 제3의 방식-즉, ‘양다리 걸치기’(hedging)-을 택하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경제와 안보 양 측면 모두에서 미국과 중국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국가 사이에서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와 베트남처럼 역내에서의 미·중 간 패권경쟁 자체가 달갑지 않은 측이 있는가 하면, 싱가포르와 태국처럼 전략적 줄타기를 국익의 제고를 위해 매우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들도 있다.

그렇다면 위의 그림에서 한국의 지향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미국과의 동맹을 폐기한 후 뒤늦게 워싱턴과의 전략적 유대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필리핀의 사례를 볼 때,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핵심 자산으로서의-특히, 지난 몇 년간 성장통을 거치며 보다 성숙한-한·미 동맹을 제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현직 부총리가 대만을 방문하고도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큰 변화를 겪지 않았던 싱가포르의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미국과 중국에 대한 상관성(relevance)을 창출해냄으로써 중국의 ‘부상’과 이에 대한 미국의 경계를 자신의 국익 제고에 놀라울 정도로 잘 활용하는 모습은 균형과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한 큰 함의를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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