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하루 외래환자 1만명 돌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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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08면

17일 서울아산병원 1층 중앙 로비에서 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신동연 기자

16일 오전 10시30분 서울아산병원 동관 1층. 진료가 끝난 환자와 대기자가 몰리면서 북적대기 시작한다. 동관과 서관의 중앙 로비에는 100명이 넘는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 동관 안쪽으로 돌아가자 파킨슨병센터 대기실에 50여 명이 빼곡히 앉아 있다. 그 옆의 진료비 자동계산대에 줄이 늘어서 있다. 복도를 따라 돌자 산부인과ㆍ안과 등의 대기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1-2-3차 의료전달체계 무너져 ‘빅5 대학병원’ 전국 환자 블랙홀

서울아산병원에는 월요일에 9800명, 주중에 9000~9500명의 외래환자가 드나든다. 이 정도면 기네스 감이다. 지난해 추석 직후에는 1만400명을 기록해 처음으로 1만 명을 돌파했다. 3년 전만 해도 하루 외래환자가 7000명 선이었다. 내년 중반에 신관(600개 병상)이 들어서면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적정 병상 7199개 초과
접수공간이 아산병원보다 훨씬 좁은 서울대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은 말할 필요가 없다. 서울대병원은 월요일이면 시장통을 연상케 할 정도다.

빅5의 외래환자는 2000년에 비해 30%, 입원환자는 40%가량 늘었다. 지난해 빅5가 가져간 건강보험 진료비는 약 1조원. 전체 보험 지출(21조원)의 4.8%다. 외래환자 진료비만 따지면 4.3%를 가져갔다. 2000년 외래 진료비가 전체의 2.4%에 지나지 않았다(건강보험공단 집계). 전체 의료기관이 5만4000여 개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비중을 짐작할 만하다.

병상 증가도 빅5가 주도하고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은 2005년 1000병상짜리 새 병원을 열었다. 아산병원뿐만 아니라 삼성서울병원은 암센터(650개 병상), 가톨릭의대는 새 병원(1200개 병상)을 짓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아산은 3000개, 삼성은 2000개에 근접하게 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서울의 병상 규모는 적정 수요보다 7199개 초과했다.
 
의료기술 美 80% 수준 견인
빅5의 덩치 키우기를 무조건 비판할 수도 없다. 환자들이 유명 병원의 의사들을 접할 기회를 넓혔다. 보험 수가(酬價ㆍ진료행위의 가격)가 낮아 입원환자만으로는 병원을 운영하기 어려워 외래환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환자를 많이 보니까 임상 실력이 올라간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환자 케이스가 많으니까 이승규 교수 같은 세계적인 간이식 전문가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빅5는 그동안 정부의 별다른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 의료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게 사실이다. 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신청된 신의료기술 95건 중 60건이 빅5에서 나온 것이다. 첨단 수술기법이나 장비, 새로운 검사법 등을 도입해 실용화한 뒤 이를 다른 병원에 보급해왔다. 이 덕분에 국내 의료진의 위암치료 기술이나 위ㆍ소장ㆍ결장 수술, 관상동맥 조영술, 심장 초음파 검사 기술 등이 선진국을 능가하고 전체 의료기술이 미국의 80%까지 쫓아갈 수 있었다.

병원별로 보면 서울아산병원은 외과의사의 수술 분야를 부위별로 세분화했고, 서울대병원은 적자를 감수하며 어린이병원을 전문화했다. 삼성병원은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고 폐암 환자 생존율을 끌어올렸으며, 신촌세브란스병원은 국제의료기관 평가 인증(JCI)에 도전장을 냈다. 강남성모병원은 안과 분야를 특화했다.
 
지방 의료인력 스카웃 경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위원은 “빅5가 큰 병원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환자와 의료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고 지적한다. 서울대병원을 찾은 김모(50ㆍ여)씨는 “전북 군산의 한 병원에서 어머니(74)가 진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서울로 왔지만 오가는 길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경북대ㆍ영남대 등 대구지역 5개 병원은 ‘환자 유출’을 견디지 못해 지난해 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경북대병원 송정흡 전략실장은 “환자들이 진단은 지방에서 받고 진료와 수술은 서울에서 한다. KTX 때문에 더 심해졌다”고 말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력이다.

“부산ㆍ경남의 대학병원 간호사들이 서울의 큰 병원으로 스카우트되고 그 자리를 지역 중소병원 간호사들이 메운다. 우리 병원 간호사 30여 명이 매년 연쇄 이동한다. 급여를 올리고 기숙사를 세워도 소용없다.”(경남 마산청아병원 최재영 이사장)

인천 모 대학병원에서 이름난 의사들이 빅5로 빠져나갔다.

양적 성장을 질이 따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환자가 늘어난 만큼 의사를 늘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은 2005년 새 병원을 열면서 입원환자가 30% 늘었지만 의사는 12% 증가했다. 다른 데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10~12시간 외래환자를 진료하고 100명 이상 위ㆍ혈압ㆍ당뇨 환자를 보는 것은 예사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암환자를 3분 진료하고 항암제를 처방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진료의뢰서 없어도 서비스
현행 요양급여기준에 따르면 환자가 대학병원에 가려면 의원이나 종합병원의 진료의뢰서를 지참하게 돼 있다. 그냥 가면 보험이 안 된다. 웬만한 치료는 의원이나 종합병원에서 받고 중환자만 대학병원에 가라는 취지다. 그러나 그냥 가도 전혀 문제가 없다. 대학병원 가정의학과는 진료의뢰서 없이 갈 수 있어 여기를 거치면 보험이 된다. 먼저 보험으로 진료하고 사후에 진료의뢰서를 내기도 한다.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1-2-3차 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의료비 상승을 초래하고 보험료와 국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증상이 일정한 고혈압ㆍ당뇨 환자들은 동네 병ㆍ의원에서 진료받아도 되지만 약을 타러 대학병원에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연세대 의대의 한 교수는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제품을 찾는 추세는 병원도 예외일 수가 없다. 중소병원의 질이 올라가지 않으면 환자들의 쏠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병원이나 의사 선택 정보가 너무 부족한 점이 ‘우선 큰 병원으로 가자’는 심리를 부추긴다. 정부가 3년마다 의료기관 서비스를 평가해 발표하지만 의료의 질은 빠져 있어 병원 선택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방에 좋은 병원이 있어도 환자들은 알 길이 없다.

“미국은 반드시 의원을 먼저 가야 하고 보험회사가 필요성을 인정하면 대학병원으로 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이 돈을 다 내야 한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학병원들은 규모를 줄여 특정 분야로 특화하고 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선민 평가위원)

건강보험공단 이평수 상무는 “의료 수요를 초과하는 병상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게 하고 남는 병상은 병원이 알아서 요양병원으로 바꾸거나 고급 서비스를 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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