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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돈 물어내게 된 불법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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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청주지방법원 민사 22단독 윤성묵 판사는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충북도민운동본부' 대표 박모(63)씨 등 11명에게 1018만원을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22일 한.미 FTA에 반대하는 불법시위 도중 기물을 파손한 책임을 돈으로 물어내라는 뜻이다. 손해배상액은 도청(720만원)과 지방청(298만원)이 청구한 전액을 인정했다.

윤 판사는 판결문에서 "평화적 집회와 시위는 헌법과 법률이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보장된다"며 "하지만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난 폭력적인 불법 집회.시위에는 엄격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법원과 검찰은 폭력시위 가담자에게 형사적 처벌만 주로 내려왔다. 관공서와 시민.상인 등이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봐도 그냥 눈감아 주고 불법 시위대에게 민사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불법시위는 민주화 투쟁의 한 방법으로 인정받았고, 시민들도 이에 관대했기 때문이다.

외국에선 불법시위에 대해 민사소송으로 맞선다. 2005년 12월 20일 미국 뉴욕시 교통공사노조(TWU)가 연금 지급 문제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뉴욕시를 비롯해 뉴욕 일대 백화점과 상인협회 등이 앞다퉈 손해배상소송을 냈고, 법원도 하루 100만 달러씩 노조에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60시간 만에 파업을 철회됐다.

현재 충북뿐 아니라 강원.충남.전남경찰청이 도청과 함께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을 상대로 기물파손과 방화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상태다. 손해배상액을 모두 합하면 6억원이 넘는다.

경찰청 관계자는 "청주지법의 판결로 6억원 모두 받아낼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평일 서울 종로에서 열린 불법시위 한 번에 683억원의 기회비용을 놓친다고 추산했다. 우리 사회의 '준법 불감증' 때문에 1991년 이후 10년간 매년 1%포인트씩 경제성장률이 깎였다고 지적했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폭력시위를 할 명분도 사라졌다. 청주지법 판결이 불법시위에 민사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철재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