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선수와 도우미 함께 뛰는 '소차사' 축구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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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7일 송파 시각장애인축구장에서 ‘소차사’ 회원들이 두 팀으로 나눠 연습경기를 하고 있다. 선수들은 머리 보호대와 안대를 착용했고, 골키퍼와 골대 뒤에 있는 도우미는 ‘빛나리’팀원이다.

"여기~, 여기~. 10m만 더 와. 그렇지, 오른쪽으로 차."

골대 뒤에 선 김현정(30.여) 삼성에버랜드 골프사업팀 주임은 쉴 새 없이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발이 아닌 입으로 하는 축구지만 김씨는 경기에 참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을 몰던 선수는 김씨가 가르쳐준 쪽으로 슈팅을 날렸다. 공이 그물을 흔들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선수는 "들어갔다"는 김씨 말에 그제야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17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옆 송파 시각장애인축구장에서는 시각장애인축구단 '소리를 차는 사람들(소차사)'의 연습경기가 열렸다.

비록 앞은 볼 수 없어도 누구보다 예민한 청각을 가진 이들은 움직이면 소리가 나는 시각장애인용 축구공으로 멋진 드리블과 슈팅 실력을 발휘했다. '소차사'는 2000년 11월 스페인 세계시각장애인축구선수권대회 출전을 위해 처음 결성됐다. 30여 명의 회원은 매달 셋째 목요일이면 송파축구장에서 연습을 한다.

시각장애인 축구선수들은 스펀지로 만든 보호대를 이마에 두른다. 앞을 볼 수 없으니 게임 도중 충돌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 머리끼리 부딪쳤을 때 큰 부상을 막기 위해서다. 희미하게라도 보이는 약시 장애인들은 눈을 가리는 안대를 한다.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과 동일한 조건에서 뛰기 위해서다.

시각장애인축구팀은 시각장애인 4명과 앞을 볼 수 있는 2명 등 6명으로 구성된다. 시각장애인은 모두 필드 플레이어고, 골키퍼와 가이드는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가이드는 쉴 새 없이 소리를 질러 선수들에게 골대의 위치를 알려줘야 한다.

소차사의 도우미는 삼성에버랜드 골프사업팀이다. 가이드는 김현정 주임이고, 골키퍼는 김학영(49) 팀장이다.

송파구청의 소개로 2005년 5월 소차사와 처음 인연을 맺은 에버랜드 골프사업팀은 매달 연습경기에 동참하고 있으며 이날이 꼭 2년째 되는 날이었다. 골프사업팀은 이름도 '빛나리'로 정했다. 볼 수 없는 이들의 빛이 돼주겠다는 뜻이다. 김 팀장은 "말이 봉사활동이지 함께 운동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라며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명랑하게 살아가는 소차사 사람들을 보면서 오히려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오용균(36) 소차사 회장은 "고정적인 가이드가 없어 경기장 관리인이나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연습해 왔는데 빛나리를 만난 이후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베풂은 또 다른 베풂을 낳는 법이다. 소차사 회원들은 얼마 전부터 경로당을 찾아 안마 봉사를 하고 있다. 오 회장은 "앞을 볼 수 없다고 고마움도 못 본 체할 수 없어 우리가 잘할수 있는 안마로 남을 돕게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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