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아폴로 13호 고장과 이라크 전이 다른 점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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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퍼센트 독트린 론 서스킨드 지음, 박범수 옮김, 알마, 583쪽, 1만9800원

2001년 9.11테러로 미국이 직면했던 상황은 흔히 1970년 달 탐험선 아폴로 13호가 우주공간에서 고장을 일으킨 것에 비유된다. 처음 당하는 위협이고,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임무지만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는 점에서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93~2000년 국내 문제 담당 수석기자로 일했던 지은이는 비논리성을 꼽는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이 9.11 사태 대처 과정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일들을 질타한다.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한 것의 하나가 "단 1%의 가능성만 존재해도 확실한 것으로 간주하고 행동에 나서라"는 딕 체니 부통령의 발언이다. 9.11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2001년 11월, 그가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A) 관리들에게 했던 이 말은 '1% 독트린'이라 불리며 대테러 전쟁의 지침이 됐다. 지은이는 이러한 비논리적 도그마가 9.11 이후 부시 행정부가 국내에서는 인권침해 논란을 부른 애국법 제정, 국제적으로는 이라크 침공 등 무리한 의사결정의 배경이 됐다고 비판한다.

이와 함께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의 그릇된 신념도 일을 그르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91년, 1차 걸프전에서 이기고도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지 않은 것을 실수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현 행정부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기회를 노려왔다. 노련한 두 사람이 합동작전을 펼쳐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 보유국이자 알카에다 지원국으로 몰아 국제 문제에 식견이 없는 부시가 침공을 결정하도록 조종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정보 책임자였던 조지 테닛 전 CIA국장의 과잉충성도 지적했다. 9.11 이후 책임을 묻지 않은 데 고마워한 테닛이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하기 위해 정보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를 '충성의 대가'가 국가정책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끈 사례의 하나로 지목한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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