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항섭 선생 첫 추모제 열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독립운동가 일파 엄항섭 선생의 추모제가 작고한지 30년만에 처음으로 30일 오전 11시 대전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장녀와 애국지사 숭모회 회원 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일파는 백범 김구선생과 이념 및 행동을 같이했던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로 6·25전쟁 중 납북돼 그 동안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최근 북한에서 고위관리를 지낸 신경완씨(69·전 경무원부장)의 증언에 의해 62년 7월30일 평양에서 세상을 뜬것으로 확인돼 대전 애국지사 숭모회(회장 이규희·53)의 주선으로 이날 추모행사를 갖게된 것.
대전시 선화동에서 사회복지시설「루시모자원」을 운영하고 있는 일파의 장녀 엄기선씨(64)는 『아버님의 생사를 몰라 10여년전 부터 태어나신 날에 제사를 지내왔다』며 『혹시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져왔는데 그런 꿈이 사라져 가슴아프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장을 지낸 일파는 1898년 9월1일 경기도 여천군 금사면 주진리 90에서 출생, 1919년 3월 보성전문 상과(12회)졸업 후 상해로 망명,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22년에 임정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24년엔 상해 청년 동맹회를 조직했으며 26년에는 임시의정원 기초의원을 지냈다.
특히 32년에는 김구선생과 함께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40년에는 한국 독립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김구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광복 후에도 신탁반대와 민족통일 운동에 앞장서는 등 민족주의 노선을 걸었다.
또 해방 후 강경에 자주 왕래하고 연설회도 갖는 등 민족통일 운동에 앞장 서오던 중 6·25가 발발, 조소앙·백관수 등과 함께 납북돼 북한에 억류돼 있다가 62년 7월30일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통일의 제단에 한줌의 흙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일파의 이 같은 행적이 확인돼 비로소 89년 독립 유공자로 국민장을 받았고 남편과 함께 독립 운동을 했던 연미당 여사도 90년 애국장을 받았다.
장녀 기선씨는 『북한 평양 대성산 아래 애국 열사릉에 아버지의 묘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서 통일이 돼 최근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한 어머님의 묘옆에 함께 모셨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습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