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감사는 … "정부 상대 로비가 더 중요한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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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이 내린 직장'에서 '신이 선택한 보직'이 공기업 감사다. 조직 내 서열 2위다. 회계감사와 직무감찰을 하기 때문에 사장으로부터 독립돼 특별 대접을 받는다. 책임은 거의 지지 않으면서 권한과 보수는 사장 못지않다. 집권 과정에 공을 세웠거나 집권여당 후보로 선거에서 낙선한 정치권 인사들이 끊임없이 이 자리를 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정치적 전리품(戰利品) 논란=파문을 부른 '감사 혁신 포럼' 소속 상임 감사들도 정치권 출신이 많다. 각종 선거에서 낙선했거나 정당 경험이 있는 정치권 관련자가 대다수다. <도표 참조>

기획예산처의 '공공기관 알리오 시스템'에 따르면 이 모임에 소속된 감사는 모두 82명. 이 중 상임 감사는 61명, 비상임 감사는 21명이다. 비상임 감사에는 회계사 출신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반면 알짜 보직인 상임 감사 61명 중에는 정치권 출신이 43명으로 70.5%를 차지했다. 감사원 출신이 8명이고 검찰 출신도 2명이다.

◆ 어떤 대우 받나=감사는 업무량은 많지 않지만 기관장에게 뒤지지 않는 높은 연봉을 받는다. 산업은행 감사의 연봉은 5억4400만원이다. 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 감사의 연봉은 3억~4억원 수준. 비금융 공기업 중에서는 한국전력(2억8000만원)을 비롯, 상당수 회사가 1억원이 넘는다. 연봉이 가장 낮은 환경관리공단 감사 연봉이 7200만원이다. 여기에다 규모가 있는 공기업.공공기관의 경우 통상 10여 명 정도 되는 감사실을 관장하며 여비서와 운전기사가 딸린 중대형 승용차도 제공받는다. 판공비 금액도 만만치 않다. 상당수의 공기업은 연봉과는 별도로 법인카드를 지급한다. 감사의 판공비가 1억원을 웃도는 경우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 내부 감사? 외부 로비?=청와대는 그동안 "공기업 감사는 정부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는 정치인 출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기업 관계자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며 고개를 흔든다. 회계의 기본 원리조차 잘 모르는 정치권 출신 감사들이 내부 경영을 감사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정치권 출신 감사들은 정치권이나 대정부 로비가 더 중요한 역할"이라며 "솔직히 공기업 내부에선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민간전문가 출신보다 뭘 잘 모르는 정치인 출신 감사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고 소개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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