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갑순이가 해냈다”/첫금메달 명중하자 가족·이웃들“수박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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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어머니 외판원하며 뒷바라지/“이젠 걱정않고 대학가겠지요”
『금메달­,금메달­.』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26일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여고생 총잡이」 여갑순양(18·서울체고 3)의 아버지 여운평(47·개인택시운전사)·어머니 박연순(43)씨는 『부처님의 은덕』이라며 기쁨의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다. 『무한한 영광과 자랑을 느낍니다. 더구나 첫 메달이라니….』
바르셀로나로부터 금빛낭보가 전해진 서울 이문동 여양 집에는 1백여명의 이웃들이 『갑순이 금메달』을 외치며 몰려들어 집·골목을 가득 메웠으며 흥에 겨운 일부 주민들이 수박·맥주 등을 사와 즉석축하파티가 벌어졌다.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강해 무슨 일이든 야무지게 해내더니….』
여양이 바르셀로나로 떠난 직후부터 경기도 고양시 도성암에서 철야불공을 드렸던 여양의 부모가 오후 8시쯤 귀가하자 동네 사람들은 『금메달 부모에 금메달 자식』을 외치며 열렬한 박수로 맞았다.
『고된 훈련으로 늘 땀에 젖어 사는 갑순이에게 제대로 뒷바라지도 못했는데. 온 국민과 영광을 함께….』
어머니 박씨는 『기록이 부진할 때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인 갑순이가 가족들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고민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은 그러나 『박씨가 어려운 가정형편에 갑순이가 연습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요구르트 배달·화장품 외판원 등을 하다 여러차례 쓰러지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여양은 어머니의 고생이 안쓰러워 『졸업후 실업팀으로 가 동생들의 학비를 대겠다』고 말해왔으나 아버지가 『대학에 진학해 후진양성을 위한 지도자의 길을 가라』고 타일렀다고 했다.
정주한서울체고코치(34)는 여양을 『담력이 뛰어나고 성격이 침착해 타고난 사격선수』라며 『입학당시 약속한 대표선수 선발,올림픽금메달,만점 기록 등 세가지 약속중 둘을 지켰다』고 만족해했다.
여양은 『대표선발때 정 코치가 사주신 빨간 모자를 쓰면 정신집중이 잘된다』며 이번 올림픽에도 쓰고 출전,금과녁을 명중시켰다.
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최초의 금메달을 땄던 양궁의 서향순양(당시 광주여고 재학중),88년 서울올림픽 양궁 2관왕 김수녕양(당시 청주여고 재학중)에 이어 여고 재학중 메달리스트가 된 여양은 집에서는 1남2녀중 장녀지만 한국남녀 사격대표선수 12명중에선 막내.
『갑순이의 첫 메달이 한국팀 선전에 큰 힘이 되길 바랍니다.』가족들은 여양과 함께 출전했다 마지막에 메달권에서 밀려난 동료 이은주양(22·한체대 4)의 탈락을 못내 아쉬워했다.<이훈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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