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위기 극복 고육책/쿠바 대폭 개헌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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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종교의 자유·외국인 투자 등 대폭 허용/개방조치 불구 “사회주의 포기” 어려워
서반구의 유일한 공산국가인 쿠바가 드디어 개방과 민주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쿠바의회는 10일 지난 59년 공산혁명이후 처음으로 종교의 자유를 공식 인정한데 이어 외국인 투자허용과 직접·비밀투표 등 선거방식 개선도 논의했다. 쿠바의회의 이번 헌법수정은 그 대상이 전체 1백41개항중 34개항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하다.
쿠바의회가 국민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는 등 헌법을 대폭 수정한 것은 급변하는 국제정치 현실을 수용하고 피폐한 국내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구소련·동유럽 등으로 야기된 정치·경제적 위기를 남북미·카리브해 연안국들과의 관계증진으로 극복해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중남미 정치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같은 개방조치에도 불구하고 쿠바가 구소련·동유럽처럼 사회주의의 포기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후안 에스칼로나 쿠바의회의장은 의회 개회연설에서 『공산사회 건설이라는 우리의 목표는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그동안 나돌았던 다당제 허용소문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같은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헌법개정내용은 획기적인 것이다.
쿠바의 변신이 불가피했던 배경으로는 우선 사회주의진영 몰락에 따른 경제적 피폐와 중남미 국가지도자들의 민주화압력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미국이 무려 30년동안이나 대쿠바경제 봉쇄정책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쿠바 대외무역의 80%를 점하던 구소련·동유럽 붕괴는 그대로 경제파탄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쿠바의 가장 중요한 생산품인 사탕수수까지 올해 최악의 흉작을 기록했다.
이런 사정때문에 현재 쿠바에서는 밀가루는 물론 비누 한조각도 제대로 구할 수 없다. 석유자원은 풍부하지만 개발을 제대로 못해 석유가 부족,군행사마저도 탱크대신 자전거로 치러야 한다.
이렇게 볼때 쿠바는 국민들의 불만폭발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외국자본의 도입을 위한 개방정책이 불가피했다. 쿠바는 이미 2년전 구소련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부터 서유럽의 자본을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관광 등 일부 분야에 외국자본이 유입되긴 했지만 구체적 개방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개방조치로 극도에 달한 국민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동안의 국제적 고립에선 일단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쿠바를 방문했던 미 기업인 1백여명은 투자가치가 높다고 결론을 내리고 미 정부의 대 쿠바정책 변경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쿠바방문단에는 필립모리스·코닥·보잉사 등 유명회사 기업인들도 다수 들어 있었다.
한편 미국의 정치분위기도 쿠바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쿠바에 대해 강경입장을 취했던 조지 부시대통령은 오는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다소 경감되는 만큼 대 쿠바 적대정책을 완화할 가능성이 크다. 쿠바 관리들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지난 72년 중국을 방문,중국에 문호를 열었던 역사적 사실을 지적하고 지금을 대미 관계개선의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
또 빌 클린턴 민주당후보나 무소속의 로스 페로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대 쿠바 정책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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