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짧아진 일본 근로자/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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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인은 역시 일벌레다. 선진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근로시간이 짧아지고 휴가가 길어지는데 반해 일본인은 이에 역행하고 있다. 최근 경기가 좀 나빠졌다는 이유로 올 여름휴가가 지난해보다 짧아졌다. 또 주어진 휴가도 모두 찾아먹는 사람이 드물다. 윗사람이나 동료들의 눈치를 봐가며 주어진 휴가중 일부만 쓴다.
3일 발표에 따르면 올 여름 일본기업의 평균 휴가일수는 7.4일로 지난해 7.7일보다 0.3일이 줄었다. 노동성이 하계 휴가조사를 시작한 지난 86년 이후 휴가일수가 감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경 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과 지방의 주요기업(제조업 1천명 이상,비제조업 30명 이상 종업원) 가운데 1천3백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노동성은 올 여름 휴가가 짧아진 것은 휴가를 여름에 집중해서 사용하기보다 연중 분산시켜 사용하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하지만 경기가 좋지않은 상황에서 이눈치 저눈치 보다 보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노동성은 올여름 휴가를 10일 정도하라고 각 기업에 권유한바 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한달간의 바캉스는 안되더라도 선진국이라는 이름에 조금은 걸맞게 적당히 놀아주기를 권한 것이다. 당국의 행정지도에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일본의 기업풍토지만 휴가나 근무시간의 경우만은 좀 다르다.
일본의 지난해 연평균 노동시간은 2천8시간. 1천5백시간대의 독일이나 1천6백∼1천7백시간대의 유럽·미국 등에 비하면 노동시간이 엄청나게 길다. 일본은 생활대국을 표방,앞으로 5년간 노동시간을 연 1천8백시간 이하로 줄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가면 다른 선진국들의 노동시간이 얼마로 줄어들지 알 수 없다. 노동시간으로만 본다면 일본의 산업경쟁력은 장시간의 노동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경우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기업은 39.2%에 불과하다. 올들어 관공서가 주2일 휴일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토요일 모두 문을 닫기 시작했으나 이에 따르는 민간기업은 아직 소수다. 연간 20일 유급휴가를 갈 수 있으나 실제 휴가일수는 8.2일이다.
놀라고 해도 놀지않고 일하는 일본인들의 생활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 일본인은 무엇 때문에 왜 사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 그럴형편도 아니면서 우리는 너무 노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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