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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엘도라도는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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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13면

만약 아르헨티나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나온다면 어떨까. 요즘 VISTA(베트남·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아르헨티나) 국가 중의 하나로 조명받고 있긴 하지만 거리낌없이 돈을 맡기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외환위기와 엄청난 국가 부채로 신음하는 후진국이라는 낙인이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반짝 떴다 사라져 간 ‘아르헨티나의 電車 채권’ … 대박의 환상 뒤에 도사린 쪽박의 악몽

하지만 100년 전엔 달랐다. 당시 영국인들은 아르헨티나의 트램웨이(전차) 사업에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엄청난 빚더미 위에서 3류 국가로 전락했지만 1세기 전의 아르헨티나는 라틴어로 ‘은(銀)’이라는 나라 이름처럼 보석 같은 투자처였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아주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소가 사람보다 많은 부자나라였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그 화려함을 빗대 ‘남미의 파리’로 불렸다. 아르헨티나가 장차 경제대국이 되리란 장밋빛 기대도 무르익었다. 그러나 대중영합주의 정책과 군사독재가 되풀이되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쇠락의 길을 자초했다. 영원한 엘도라도는 없다는 투자의 정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 유명한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인들은 단단히 한몫 잡기 위해 프랑스 북부에 튤립시장을 열었으나 결국 거품이 꺼지면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는 신세가 됐다. 튤립 투기를 처음으로 파헤친 찰스 매케이는 “사람은 소속집단의 생각에 쉽게 동조한다. 그리고 집단적 미몽에서 아주 느리게 깨어난다”며 광기(狂氣)를 좇는 집단 투자심리의 말로를 경고했다.

160여 년이 지났건만 그가 간파한 인간의 행태는 지금도 유효하다. 남들이 다 가입한다거나 수익률이 좋다는 말에 부화뇌동해 해외펀드에 무작정 돈을 넣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실수를 되풀이하게 마련이다.

외환위기 직전 한국의 종합금융회사들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종금사들은 일본에서 저리로 돈을 빌려와 고금리를 노려 동남아와 러시아 채권에 투자했지만 약 1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결국 연쇄 파산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됐다. 당시 선진국 투자은행들은 과도하게 유지하던 동남아 투자비중을 줄이기 위해 채권을 설계해 팔았는데 이를 해외투자 경험이 없던 종금사들이 떠안은 것이었다.

채권이나 주식과는 거리가 있지만 해외투자를 얘기할 때 일본의 ‘가미카제(神風)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은 1980년대 이후 엄청난 무역흑자를 올리며 세계경제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호놀룰루에 이르기까지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저돌적으로 부동산을 사들였다. 미쓰이 물산의 회장은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려고 3억1000만 달러였던 뉴욕 맨해튼의 엑손 빌딩을 6억1000만 달러에 매입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미국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섰던 일본 기업들은 빚더미에 깔리고 말았다.

물론 성공 사례도 많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이 대표적이다. 싱가포르의 외환보유액 등을 굴리기 위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주도한 GIC는 해외 부동산에 많이 투자해 재미를 봤다. 한국에도 외환위기 이후 본격 진출해 서울 무교동 파이낸스센터와 강남 스타타워 등을 사들여 큰돈을 벌었다. 각국의 유능한 금융인재들을 스카우트한 뒤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저평가 상품에 투자해 좋은 결과를 냈다. GIC 사례가 주는 교훈은 꼼꼼하게 정보를 수집해 시장의 큰 흐름을 잡고 장기간 길목을 지키는 투자법이 그마나 먹힌다는 것이다.

투자의 대가인 존 템플턴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말이 “This time is different(이번엔 달라)”라고 꼬집었다. 환상에 젖어 무턱대고 투자게임에 가세했다간 뼈도 못 추린다는 경고다.

한국에서 해외펀드를 통한 글로벌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7년부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투자시장에도 국제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개인의 해외투자 역사는 아직 일천하다. 해외투자의 역사적 흥망을 곱씹어볼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순간, 역사가 외치는 것은 ‘자기최면’이야말로 성공투자의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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