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기억 - 50대 가장의 뭉클한 멜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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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14면

오기와라 히로시의 장편 소설을 옮긴 영화 ‘내일의 기억’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떠올리게 만든다.

★★★☆ 감독 쓰쓰미 유키히코 주연 와타나베 겐·히구치 가나코 러닝타임 121분

두 영화 모두 행복한 순간에 불행이 닥쳐온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멜로 드라마의 운명론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주인공의 세대는 다르다. 한국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신혼의 달콤함을 만끽하는 여주인공의 불행을 다루고 있다면, ‘내일의 기억’의 주인공 사에키(와타나베 겐)는 쉰을 목전에 두고 있는 가장이다.

직장에서 유능하기로 소문난 사에키는 새로운 광고를 따내는가 하면, 외동딸 리에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은 그의 숨 가쁜 일상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설정은 흔들리는 일본의 중년 가장들에 관한 말들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에서는 한때 ‘젖은 낙엽’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직장 생활에 매진한 나머지 퇴직 후 가정에서 귀찮은 존재가 된 가장을 이르는 말이다. 젖은 낙엽처럼 귀찮게 신발에 달라붙는다는 의미에서 다소 희극적으로 사용됐다. 치매에 걸려 아내 에미코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 사에키는 ‘젖은 낙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자 아내에게 이혼해 달라고 간청하기도 하고, 귀가가 늦는 아내를 의심하기도 한다. ‘내일의 기억’이 신파 멜로의 정서를 벗어나 일상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사소한 현실의 에피소드를 풍부하게 이끌어내는 탓이다.

전형적인 대목도 있다. 아내와 함께한 도자기에 얽힌 추억은 영화 속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데, 사에키는 추억의 장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를 만난다. 하지만 사에키는 아내를 알아보지 못한 채 이름을 묻는다. 에미코라는 답변에 그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좋은 이름이군요”라고 답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소 신파적이라고 해도 마음의 울림을 이끌어내는 멜로 영화의 뭉클한 장면이 되어준다.

★표는 필자가 매긴 영화에 대한 평점으로 ★ 5개가 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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