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구기 재현에 바친 반세기|지홍 박봉수회고전을 보고… 최병직(미술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해 75세로 타계한 한국화가 지홍 박봉수의 1주기 기념전(9일까지 예술의 전당 미술관)은 생전에 그의 작업들에서 강하게 풍겨왔던 그 다양한 경향들이 한자리에 모인듯하여 전시장 초입에서부터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마치 물결을 타듯, 바람을 탄듯 우주의 초음파와도 같은 신비한 부호를 담은 드로잉 작품과 『이곡천』『금장천』이라 명명된 자신의 고향인 경주의 인상기가 가장 먼저눈앞에 들어온다. 연이어 그가 30년대말 금강산에 들어가 3년간의 산사생활을 한 인연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되는 불교적 요소가 강하게 밴 『반가사유상』『만다라』등을 비롯한 일련의 불상시리즈가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일찍이 40∼50년대부터 시도한 고도의 실험작이 군데군데 눈에 뛴다. 이 작품들은 콜라주기법은 물론 당시로서는 상상할수없었던 재료들을 사용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위의 세가지 주요 작업경향과 함께 또다른 관심을 집중시키는 경향은 「인간」시리즈. 80년대 중반에 발표했던 이 작업은 영계와 육계·사계가 동시에 한 화면에 존재하는 3차원의 입체적 화면을 시도했다.
생전에 스스로 풍운아적 삶과 야인의 길을 택했던 그는 일찍이 20대때 일본·중국등지에서 수업한 이후에도 만년까지 세계각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거나 여행하면서 폭넓은 견문을 넓혔으며 불교에 깊이 심취해 있으면서도 가톨릭의 영세를 받는등 「규범」과 「형식」의 초월을 신조로 작품생활을 해왔다.
이같은 지홍의 예술세계는 우리들에게 양면적 교훈을 남겨 준다. 하나는 마치 흐르는물과 같은 번미세계의 변화를 향해 변혁의 몸부림을 거듭했던 작업자세에서의 교훈이다.
다른하나는 그의 선구적이랄 수 있는 실험의식의 조형적 반영에서 드러나는 형식논리의 혼란이며, 작가가 지니고 있어야 할 표현언어의 독자성에 대한 문제점이다.
그러나 이같은 허실속에서도 반세기가 넘는 기간중 평생 한국적·동양적 미감의 재발견에 혼신의 힘을 쏟으려했던 고인의 작업은 이번 회고전에 그치지 않고 연속적인 재평가를 받아야할 만큼 우리 미술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겨두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