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5만원, 10만원짜리 발행 왜 논란이 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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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여러분, '배춧잎' 좋아하세요? 진짜 밭에서 나는 배추 말고, 세종대왕님 그려져 있는 '배춧잎' 말이에요. 1만원 지폐의 색깔이 배춧잎 색깔과 비슷해서 흔히 그렇게 불리죠. 어른들도 배춧잎을 좋아하지만 틴틴 여러분도 어른들 지갑에서 배춧잎이 나오면 저절로 입이 벌어질 거예요.

누구나 1만원짜리 지폐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금 돌아다니는 돈 중에서 단위가 가장 크기 때문일 겁니다. 10만원짜리 돈도 봤다고요? 그건 현찰이 아니고 수표죠.

1만원으로 살 수 있는 게 많기는 하지만 요즘은 옛날처럼 아무거나 다 사기 힘들어요. 어머니들이 시장에 갈 때 만원으로 살게 없다고 푸념하시는 걸 들어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피자도 브랜드 제품을 사먹으려면 1만원으로는 힘들죠. 제일 큰돈으로도 피자 한판을 사먹을 수 없다니.

그러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1만원보다 훨씬 가치가 큰 지폐도 많아요. 미국 달러만 봐도 그래요. 100달러짜리 지폐는 우리 돈으로 치면 10만원에 조금 못 미치죠. 지갑에 100달러짜리 한 장만 있으면 1만원짜리 10장을 넣고 다니는 것과 같은 셈이에요.

10장 가지고 다닐 걸 한 장으로 해결하고, 피자 한 판을 사먹고도 거스름돈이 훨씬 많은 화폐, 가지고 다니면 편하겠지요. 그래서 요즘 나오는 얘기가 고액권 발행이에요. 값어치가 높은 돈을 새로 만들자는 거죠. 이달 초 한국은행은 2009년에 5만원과 10만원짜리 고액권을 발행하기로 결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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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비싼 지폐의 액면 금액인 1만원이 우리나라의 소득.물가 등 현 경제 상황에 비해 너무 낮다는 게 이유지요. 그만큼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들고 불편이 크다는 겁니다. 실제로 1만원권이 발행된 1973년 이래 물가는 12배 이상 상승하고 국민소득은 150배 이상 커졌어요. 우리 경제 사정은 크게 변했지만 1만원은 34년 동안 유지됐어요. 1만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과 질도 그만큼 줄어든 셈이지요.

외국과 비교하면 더 분명히 알 수 있죠. 잘사는 나라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9개 국가의 최고액권 평균 금액은 37만원이나 돼요. 스위스에선 1000프랑짜리 지폐가 있는데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75만9100원이죠. 유럽 12개국에서 사용되는 500유로짜리 지폐는 약 63만원, 일본의 1만 엔은 약 7만7000원에 해당되죠.

선진국뿐 아니에요. 체코에선 우리 돈으로 20만원에 해당하는 5000코루나 지폐가 있고, 태국도 1000바트(2만8400원)짜리 돈이 있어요.

최고액권이 1만원밖에 안 되니까 지금은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가 대신 쓰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불편하기도 하고 비용도 많이 들지요. 10만원권 수표는 연간 10억 장 가량 발행되는데 이것을 만들고 취급하는 데만 2800억원을 쓴데요. 10만원권이 발행되면 10만원권 수표는 사실상 사라지게 돼 그만큼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되죠.

또 기존 1만원권 가운데 40%(9억 장) 정도가 고액권으로 바뀌어 그만큼 제조.운송.보관 등 화폐 관리에 쓰는 돈을 줄일 수 있어 연간 40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답니다. 또 분실.도난 등 사고와 위.변조가 많은 10만원권 수표를 이용할 때 드는 불안감도 없어지겠죠. 한은에 따르면 사고나 위.변조된 자기앞수표가 지난해 7만6537장이나 됐대요.

게다가 고액권이 생기면 가지고 다녀야 할 지폐의 양이 줄어들고 현금을 입출금하거나 주고 받을 때 걸리는 시간도 줄겠지요. 돈을 사용하는 게 더 편리해진다는 얘기예요. 게다가 자기앞수표를 발행할 때 내야 하는 발급 수수료를 부담할 필요가 없고 돈을 주고받을 때 주민등록번호.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노출해야 하는 이서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죠.

그렇다면 고액권 발행이 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을까요. 고액권 발행이 반드시 좋은 점만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고액권 발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검은돈' 거래가 늘어나지나 않을까하는 점이에요. 추적당할 수 있는 자기앞수표 대신 고액권을 이용하면 적은 부피로도 큰돈을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불법적인 거래가 늘어날 수 있다는 거죠. 1만원권으로 1억원을 만들려면 사과상자가 필요하겠지만 10만원권으론 작은 쇼핑백 하나로도 충분하죠. 이 때문에 국가청렴위원회는 공식적으로 고액권 발행을 반대하고 나섰어요. 아직 우리나라엔 검은돈 거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액권 화폐가 발행되면 뇌물 및 불법정치자금 거래, 비자금 조성 등 부패에 쓰일 소지가 많다는 주장입니다.

또 고액권 발행은 물가를 자극할 수도 있어요. 1만원짜리 10장과 10만원짜리 한 장을 비교해 보면 심리적으로 1만원짜리 10장이 더 많게 느껴지잖아요. 10만원짜리 한 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게 되죠. 그리고 고액권이 발행되면 외국에서처럼 조직적인 화폐 위조범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있어요.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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