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불귀·7'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불귀.7' - 김소연(1967~ )

길, 당신의 흉부에 난 흉터, 어둠 속에서 길만이 훤하다 쌀알만 한 먼지를 짊어진 개미 한 마리, 먼지를 쌀알로 믿는 개미 한 마리 그 길을 걷는다 종종대는 개미의 더듬이가 늠름하다 뒤통수가 힘차다


그렇지. 지상의 모든 길은 어쩌면 흉부에 난 흉터. 흉터가 길인 과거와 미래를 알고 있네. 흉터가 길인 추억도 알고 있네. 삶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 흉터에서 흉터로 몸을 건네는 것일지라도, 알고 있네, 흉터는 삶의 방증. 더듬이를 그대의 가슴팍에 올리네. 꽃 피어라 흉터야 꽃 피어라 흉터야. 오늘 내가 짊어지고 가는 일상이 먼지를 쌀알이라 믿는 것이어도, 그 헛됨 속에 아름다움을 볼 것이니, 그대여 나는 씩씩하게 가련다. 그대여 우리 늠름하게 가자.

김선우·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