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백원짜리 자장면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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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매일 점심때만 되면 과천정부종합청사 내 애호가들의 인기를 독차지(?) 해오던「단돈 6백원」짜리 자장면이 이달 초부터 자취를 감췄다.
박봉에도 묵묵히 일하는 하위직 공무원들은 물론, 간단히 요기를 때우려는 일부 국·과장들까지 단골손님으로 확보해온 6백원짜리 자장면이 적자를 이유로 청사 안 후생관 지하에서 사라진 것.
물론 값이 1천원으로 67%나 껑충 뛰고 매주 토요일 하루에 한해 점심메뉴로 명맥을 유지하기는 하나 자장면 애호가들에게는 결코 예전같지 않다.
옆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스칠 만큼 좁은 공간에 식탁 80석이 촘촘히 놓여 조심스레 젓가락질을 해야 하고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에는 검은 자장소스가 묻은 입가를 휴지로 훔치고 나오며 같은 식구임을 확인했다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를 만큼 자장면은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여직원들은 같이 근무하는 언니·동생뻘 동료들에게 몇천원으로 큰 부담없이「한턱」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자장면 점심이었다.
그러나 과천에서 가장 싼 이 자장면은 평일 하루 4백∼7백명분을 팔아봐야 인건비 등을 제하고 나면 항상 적자를 면할 길이 없어 업주(?)인 총무처의 가혹한 결단이 내려졌다.
이 때문에 일부러 청사 밖에까지 나가 자장면·삼선자장면을 1천6백∼2천5백원이나 주고 사먹지 않더라도 안에서 값싸게 식사하고 남은 시간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거나 밀린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없어졌다.
보사부에 근무하는 여직원 윤모양(21)은『평소 월급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1천원을 내고 4백원을 거슬러 받으면서 내가 번 돈이 꽤 쓸모 있다고 느꼈던 쾌감이 없어진 셈』이라고 아쉬워했다.
점심시간에 만난 7급 행정직의 30대 중반 공무원은『입맛이 당길라치면 한 사람당 한 그릇이 원칙인 자장면을 일하는 아줌마들의「눈치」를 봐가며 서너 그릇까지 먹는 스릴도 맛보았다』면서『값비싼 자장면에 못지 않게 나름대로 감칠맛 나는 후생관의 자장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만큼 복리후생차원에서 부활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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