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생명』펴낸 시인 김지하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지구를 살리자는 등 환경문제가 요란합니다. 각 지역, 각 분야에서 무엇 무엇을 이렇게 저렇게 살리자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진정 「생명」이란 무엇인가,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생명의 질서는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시인 김지하씨(51)가 15일 산문집 『생명』(도서출판 솔간)을 펴냈다. 70년대 유신하에서의 민주화투쟁과 그에 따른 7년여의 투옥, 부정과 부패를 속 시원히 폭로하고 민주화의 희원을 절창한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 등 일련의 시를 통해 저항시인으로서 세계적 주목을 끈 금씨는 80년대 들어 산문집 『밥』 『남녘 땅 뱃노래』 『살림』 등을 펴내며 생명사상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왔다. 이번에 출간된 『생명』에는 「생명사상」 「생활론」 「예술론」「여성해방론」 등 4부로 나눠 김씨 생명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글 19편을 실었다.
『자연스런 삶의 흐름을 차단 당한 7년의 감옥생활은 내 사상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막힌 것을 뚫으려 하다보니 막힌 것도 뚫을 것도 없는 생명의 드넓음에 부닥치게 되더군요.』
74년 내란선동죄 등으로 사형까지 선고받고 투옥생활의 갑갑함을 극복하기 위해 참선도 하고 불교서적도 뒤적이다 감옥 안팎의 삶도 결국 한 생명의 큰 흐름에 연속돼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김씨는 생명사상에 눈떴다. 투옥 중 참선을 통해 자연적인 죽음과도 대립하지 않는 포괄적인 생명을 발견한 김씨는 출옥 후 수운·해월 등의 동학사상을 독자적으로 해석하면서 우주적 생명의 수행과 그에 따른 사회변혁의 실천적 전망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지금 우리의 생활양식은 생명의 원리와 법칙으로부터 너무 떨어져 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생명운동이란 생명의 원리에 맞게 살자는 것입니다. 우선 매일매일 삶 가운데서 공해를 덜 일으키는 일이 중요해요. 합성세제 덜 쓰기, 쓰레기 분리수거, 유기농법에 의한 생태계보호 등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가치관 확립을 위한 문화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을 마구 죽이고 남을 죽이고, 나아가 툭하면 자신의 생명마저 스스럼없이 버리는 상황하에서 예술·종교·매스컴 등이 일반인에게 생명에 대한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세요. 벌써 국내경제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공해산업을 억제하자」는 리우환경회의에 눈앞의 이익만 생각, 불이 부어있지 않습니까. 누구든 생명·환경보호 등을 외치면서도 생명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 주입되지 않아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단적인 예 아니겠어요.』 강경대군 타살에 항의한 작년 대학생들의 잇단 분신을 생명사상에 입각한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는 글로 질타, 크게 반향을 일으킨 후 김씨는 1년여 집에서 푹 쉬고 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깊은 병중에 있다는 금씨는 우선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 일로부터 또 다시 새롭고 넓은 생명의 길을 개척하겠다 한다. <이경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