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12. 아시아서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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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6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유행했던 왼손 핑거그립(上)과 내가 아시아서킷에서 새로 익힌 팜그립.

작은 키에 어깨너머로 골프를 배운 내가 국내 골프대회에서 맹활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훈련과 체력 단련을 열심히 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제대로 된 스윙을 익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경쟁자들도 훈련에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 제3회 한국프로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한 나는 그 덕에 아시아서킷에 출전하게 됐다. 홍콩.필리핀 등지에서 열린 아시아서킷이라는 '큰 물'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은 국내 선수들과 확실히 달랐다.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그들의 그립과 스탠스가 한국 선수들과 너무 달랐다. 우리는 왼손 손가락으로 채를 잡는 '핑거그립'이 대부분 이었는데, 그들은 손바닥에 채를 고정시키는 '팜그립'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 선수들은 왼발을 앞으로 내는 크로스 스탠스를 취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스퀘어 스탠스였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내가 연덕춘 선생에게서 배운 골프 스윙은 40년대 방식이었다. 당시 세계 골프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서킷에 출전한 호주의 피터 톰슨, 케이 네이글 등은 공을 높이 띄우는 샷을 했고, 회전을 척척 걸어 그린에 올렸다. 거리도 나보다 훨씬 많이 나갔다. 톰슨은 브리티시오픈에서 5승을 거둔 선수다.

나는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것보다 그들의 스윙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눈으로 익히는데 신경을 썼다. 메모도 하고 잡지 사진도 모아서 그대로 따라했다. 거울 만이 나의 스승이었다.

군자리골프장 1번 홀은 티잉그라운드에서 그린 쪽으로 200야드 지점이 언덕으로 되어 있는 코스다. 그립과 스윙을 바꾼 뒤에 전과 달리 티샷한 공이 언덕 위에 올라가지 못했다. 페이드가 나서 거리가 줄어든 것이다. 골프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주위 사람들은 "왜 스윙을 바꾸려느냐"며 말렸다. 연덕춘 선생이나 박명출 선배도 "스윙을 바꾸기 힘들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클럽으로 공을 치면 잘 맞지 않아 몽둥이를 사용해 스윙 연습을 했다. 빈스윙만 하루에 300~400개씩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거리가 30야드 이상씩 더 나갔다. 강력한 회전이 걸린 내 공은 마술을 부린 것처럼 그린에 멈춰서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언더파를 칠 수 있었다. 62년 제5회 국제프로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한 나는 64년부터 독주하기 시작했다. 64년 제7회 한국프로골프선수권 우승에 이어 제7회 한국오픈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를 모두 석권한 것이다. 64년부터 67년까지 한국오픈 4연패를 달성했다.

나는 '골프는 그립'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공을 잘 치고 싶으면 '그립을 한번 확인해 보라'고 당부한다. 거기에 악력기 구입도 권하고 싶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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