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대희 코너] 섹스리스 부부는 공허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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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많은 사람이 섹스가 없어도 부부생활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상호 간 애정만 뚜렷하다면 그까짓 것 안 해도 백년해로 못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녀는 그것을 통해 서로 가까워지고 또한 인생의 동반자로서 공생의식이 생기는 법이다. 그 실례를 하나 설명하겠다.

수년 전 65세 정년을 앞둔 모 대학 교수를 진료한 일이 있었다. 근자에 중년의 후처를 얻었는데 발기부전으로 섹스 불능으로 초야를 못 치렀더니 아내가 친정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상담의 요지였다. 동거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단 한 차례도 성적 접촉이 없었으므로 남편이 여전히 남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부인 측의 불만이었다.

호칭도 통상적 남편을 지칭하는 ‘여보’가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되니 자신의 위치가 주부인지 파출부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혼은 남녀 양자의 결손감의 보상’이라고 설파한 존 리비아 박사의 언급이 없더라도 섹스가 없으면 그 어느 쪽이나 내 사람이라는 신념이 생기지 않는 것인가 보다.

앞의 두 임포 환자의 고민이 모두 음경보철술이란 수술로 해결되고 나서 부부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례를 살펴보면 섹스가 없는 부부생활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적 불만족에서 생긴 부부간 갈등이 남성의 정상적 성기능 보존만으로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그 밖에도 해결하기 힘든 성 문제가 부지기수로 많다. 제 아무리 튼튼하고 날카로운 창을 가졌더라도 그것으로 관통되지 않는 방패를 만난다면 그 창은 이미 존재가치를 잃는 것처럼 변강쇠 같은 출중한 정력으로도 여성이 꿈쩍 않는다면 남성이 느끼는 좌절감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수밖에 없다.

섹스의 심리 가운데 흥미로운 사항의 하나는 모든 남성이 여성에게 오르가슴을 안겨주고 싶은 심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 특이한 성 심리 때문에 남성은 숙련된 테크닉과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여성이 오르가슴에 도달하면 그 순간 더 할 수 없는 희열을 맛본다. 이른바 성취감이라고 하는 기쁨이다.

그럼 이런 때 여성은 무엇을 느끼는가. 성 학자 피렌치 박사의 이론에 의하면 여성은 오르가슴을 통해 느끼는 체력적 손모감(損耗感)에서 남성에게 성의 쾌락을 선물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찾은 고객과의 섹스에서 매춘부들이 신음소리를 지르고 몸을 경련하듯 떠는 시늉을 짐짓 해보이는 것은 바로 체력의 소모를 감당해가며 남자의 쾌락을 위해 오르가슴을 일으켜 준다는 선심성 서비스의 일종이다. 남자들은 섹스 과정에 생성되는 점액성 분비물이 남성을 위한 서비스라는 여성들의 생각을 종종 읽었을 것이다.

그처럼 여성이 섹스에서 얻는 것 없이 주기만 하는가.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여성이 섹스에서 얻는 생리적 이익은 성교에 의해 수태되는 것 말고도 그것을 통해 배란 생리가 조정되고 흐트러졌던 뇌신경계에 평온이 회복된다는 것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생리학자들에 의하면 남성에게는 그런 복합 작용이 전혀 없다고 한다. 굳이 찾아본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교접했다는 만족감, 감당하기 어려워 고통스럽던 성적 흥분에서 해방되는 이완의 느낌, 심리적 자신감 따위를 거론할 수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독자는 남녀의 성적 불만이 직접 정신적 불안으로 이어지는 원리를 이해했을 것이다. 중복되는 설명이지만 여성은 섹스에서 음성적으로 남성 파트너의 정신을 지배한다. 성행위를 통해 남성은 흥분과 절정을 맛보고 마침내 사정함으로써 섹스가 종료되지만 그 성관계에서 여성에게 오르가슴이 없다면 그것은 공허한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이 불감증이면 성취감 결손에서 생기는 남성의 정신적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성취감 달성이 남성의 사회적 활동에 활력소가 되고 에너지원이 되는 것은 늘 경험을 통해 남성들이 숙지하는 터이다. 결국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것은 남성이 뒤집어써야 할 정신적 굴레를 벗겨준다는 점에서 남성에게 반드시 필요한 삶의 요소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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