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묘지 관리소장|일년 내내 근엄한 「호국영령 상주」|국가 원수 참배 때마다 집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장지열 국립묘지관리소장은 요즘 들어 자신이 바로 국립묘지를 관리하는 총책임자라는 사실에 새삼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지난 3월 국방연구원(KIDA)에서 관리관 승진과 동시에 소장으로 부임, 처음으로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고있기 때문이다.
장 소장은 그래서 6월 한달 만큼은 경내 주요묘역을 새벽 산책코스로 정해 묘역도 익힐 겸 묘소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이곳이 공직생활의 마지막 임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 동작동 산44의7번지.
서울 남쪽 관악산의 한 줄기인 공작봉은 그 형세가 마치도 공작이 날개를 활짝 펴고 교태를 뽐내는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에 국립묘지가 들어선 것은 1955년 7월.
6·25당시 전사한 영현들을 처음에는 부산 범어사에 안치해오다 그 수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국방부에서는 국군묘지 설치를 결의하고 53년9월 현 위치인 동작동에 부지를 확보, 1년여의 공사 끝에 55년 7월 국군묘지를 창설하게 됐다.

<국립묘지 55년 조성>
이듬해인 56년 1월에는 최초로 전몰장병에 대한 안장식이 있었고 애국지사가 안장된 것은 8년 후인 63년3월이 처음이었다.
그 때문에 당초 국군묘지로 출발했다 국립묘지로 승격되게됐고 65년 3월30일 정식 명칭으로 확정됐다. 정부는 다시 79년8월 대전에 1백만평을 확보해 국립묘지 대전분소를 설치, 국립묘지는 이제 두 곳이 됐다.
총면적 약43만여평에 이르는 국립묘지가 오늘처럼 성역화 되기까지에는 무엇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이 가장 크다는게 정설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의 묘소에는 가장 많은 참배 객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행정 직급상 1급 관리관으로 분류돼 있는 국립묘지관리소장은 직제상 국방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장관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있다.
관리소장은 그 직속으로 집례시 소장을 보좌하는 의전관(부이사관급) 1명을 두고 ▲ 관리과 ▲전례과 ▲호국 선양과 등 3개 과를 통할·지휘한다.
소장의 업무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국내와 주요 인사들의 참배를 집례하는 일이다.
참배행사는 참배자가 누구냐에 따라 특급행사, A급 행사, B급 행사 등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되고(국방부령) 각 등급에 따라 집례자와 의장대 규모도 다르다.
국가원수(외국원수 포함)가 참배할 때는 특급행사로 이때 집례는 소장이 직접 주관하며 의장대 43명의 도열을 받는다.
대장 이상 장·차관급의 A급 행사 때는 23명의 의장대가, 2∼3급 이상 공무원의 B급 행사에는 13명의 의장대가 뒤따르고 집례는 의전관과 전례과장이 각각 주관한다.
따라서 관리소장은 대통령이나 외국원수가 현충탑을 참배할 때는 반드시 의식을 주관해야 한다.
국립묘지 관리 소장이란 자리가 비록 힘있고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1년에 몇 차례 국가원수가 호국 영령들에 절하도록 명령(?)하는 자리인 것만은 틀림없다.
국립묘지는 연간 10여 명씩의 외국원수들이 다녀가는데 올 상반기에는 부시 미국대통령과 미야자와 일본총리 등 5명이 참배했다.

<마음대로 못 웃어>
특급행사시 집례자인 소장은 참배자의 왼쪽에 서고 그 오른쪽에는 지역사령관(동작동 국립묘지의 경우 수방 사령관)이 배석한다.
그러나 지난 1일 서아프리카 베냉 대통령이 현충탑에 참배했을 때는 수방사령관 대신 예하부대인 52사단장이 배석했다. 참배의식에도 국위가 방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리소 직원들은 뭔가 즐거운 일이 있어도 마음대로 웃지 못한다. 1년 내내 상중이기 때문이다.
관리소장도 예외는 아니나. 그래서 평소 잘 웃던 사람도 관리소장 1년만 하고 나면 저절로 표정이 엄숙하고 근엄해진다고 한다.
행정기관의 관리관이라면 결코 낮은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국립묘지 관리소장은 축의금을 낼 때면 언제나 자신의 직함이 찍혀있는 봉투대신 굳이 일반 편지 봉투를 사용한다. 축하 받는 사람에게 행여 오해를 살까봐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립묘지 관리소장이란 자리는 따라서 승진돼서 부임해도 달갑지 않다는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래서 국방부에 오래 근무하다 마땅한 곳이 없어 이곳 소장으로 발령이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공직생활이 종착역에 다달았음을 감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직생활 종착역>
그나마 소장은 직위라도 높다지만 아직 미혼인 하위직 공무원들에게는 말못할 사정도 없지 않는 것 같다. 맞선을 볼 경우 직장을 속이기도 하지만 어쩌다 묘지에 근무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심중팔구 혼담이 깨지기 십상이라는 것.
55년7월 초대 관리소장에 김종관씨(예비역 육군 대령·사망)가 부임한 이래 현재까지 국립묘지 관리소장은 7대에 이르고 있다.
역대 소장들의 직급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다. 초대와 2대까지는 군무2급, 5·16후인 3대는 이사관, 4∼5대는 별정 1급 등으로 상향 조정되어 오다가 현재의 관리관으로 정착된 것은 90년 제6대 때부터.
이 가운데 초대 소장을 제외한 2대(이종태·사망), 3대(박응규·사망), 4대(이주호)까지는 모두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들로 전역과 동시 소장에 부임했다.
이들 중 최장수 소장을 지낸 사람은 4대 이주호씨(현 사업)로 73년4월부터 85년1월까지 무려 12년간을 재직했었다.
군 출신이 아닌 순수 민간·관료출신이 소장을 맡기 시작한 것은 5대 황광현씨를 비롯, 6대 강명석씨(현 군인공제회감사)와 현 7대 장지열씨 등에 이르고 있다.

<이주호씨 최장수>
국방부가 이처럼 소장자리를 군 출신에서 민간 관료출신으로 바꾸게 된 것은 국방부 본부 내 일반직들의 인사불만을 해소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들에게 국방부 본부자리를 내주기는 어려워 고육책의 하나로 국립묘지 관리소장 자리를 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 소장은 금년도 신규사업으로 ▲현충탑 뒤 지하에 있는 위패실 확장 공사 ▲애국지사 묘역 개축 공사 ▲현충 야외 조각상 건립 ▲비석좌태 교체 등 네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약 25억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이는 관리소 연간예산(45억원)의 약50%에 해당된다.
장 소장은 그래서 내년도 국방예산이 제발 대폭 증액은 못되더라도 크게 깎이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김준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