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악을 위하여'… 연주자를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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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메이어

지휘자 정명훈(54)씨는 2004년 서울시향 상임으로 취임한 이후 단원들을 직접 뽑았다. 여섯 차례에 걸쳐 국내는 물론 런던.뉴욕의 오디션을 통해 연주자를 골라냈다. 해외 연주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개인적인 오디션을 하기도 했다.

이 결과 오케스트라 단원 대부분이 물갈이됐다. 하지만 관악 파트 7개 부문에는 수석이나 부수석중 꼭 한 사람씩이 비었다. 오보에 수석, 플루트 부수석 등은 지금도 공석이다. 수준에 맞는 연주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뽑을만한 사람은 없었다"는 게 정씨의 전언이다.

"한국 오케스트라에서 현악은 세계적 수준이어도 관악은 (그 수준이)안 된다는 말이 많다"는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 씨의 말처럼, 관악 파트는 한국 오케스트라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외국 교향악단에 비해 악보만 읽어내는 수준에 그치거나 앙상블을 잘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휘자 정치용(50.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씨는 "오케스트라에서 관악기 쪽은 대부분 외국인이 앉아있었던 것이 현실"이라며 그 이유로 "적당한 연주자를 뽑지 못한 경우 '임시방편'으로 외국인 연주자를 초빙해 자리를 채워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올린.피아노 등에 비해 조기교육이 정착되지 못한 탓"이라는게 정씨의 해석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시향이 팔을 걷어붙였다. 일단 부지휘자로 세계적 클라리넷 주자인 폴 메이어(42)를 최근 영입했다. 예후디 메뉴인, 켄트 나가노, 요요마 등과 함께 무대에 섰고 100장 넘는 음반을 낸 연주자다.

서울시향에서 그의 또 다른 직함은 '목관 섹션 트레이너'. 관악기 주자들의 음악적.기술적 훈련을 책임지고 앙상블을 이끌어내는 역할이다. 여기에 새로운 주자를 발굴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폴 메이어와 함께하는 'SPO(서울시향) 우드윈드(목관) 아카데미'는 클라리넷.오보에.플루트 등을 전공하는 대학생을 뽑아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프로그램. 열매만 바랄 게 아니라 텃밭부터 일구자는 취지다. 3월 각 대학의 추천을 받아 10명을 선발했고 이달 중 최종 선발자를 가린다. 훈련을 마친 학생들은 교향악단의 객원단원으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국내 오케스트라에서는 처음 하는 시도다.

서울시향 공연기획팀 오병권 팀장은 "카라얀이 시작한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에서는 대학생을 2년 동안 훈련시켜 일부를 베를린필의 단원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연주자들의 전반적인 실력을 우선 향상시키고 교향악단 수준도 올리는 선순환을 이룰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어리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예정이다.

폴 메이어는 "수준을 올릴 수 있다. 희망이 보인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들의 도전이 한국 관악 연주의 수준을 끌어올릴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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