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간 이명박 … "검증하자는 사람" 해석 해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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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3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경주이씨 표암시조 제사에 참석해 활짝 웃고 있다. 뒤쪽은 이재오 최고위원. 송봉근 기자

▶한 지방지 기자="'서유기'에 보면 저팔계가 악귀를 쫓습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황금돼지 목각장식을 쓰다듬으며) 나한테도 악귀가 많아서…. "

▶이방호 의원="검증하자는 사람도 있잖아요."

▶주호영 비서실장="(다소 당황한 낯빛으로) 불교에서 악귀를 쫓는다는 건 사사로운 마음을 물리친다는 뜻입니다."

2일 오전 경주 불국사 주지인 성타스님의 방에서 오간 대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이날 경주를 찾았다. 경주 이씨(李氏) 시조 제사에 참석하고 근처 경산에서 열린 뉴라이트 희망전진대회에도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전 시장은 이들 행사에 앞서 불국사부터 방문했다. 그는 전국 어딜 가든 근처에 있는 유명 사찰을 찾는다. 기독교 장로인 만큼 상대적으로 열세인 불교신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노력이다.

특히 이날은 불국사 극락전 처마 밑에 있는 황금돼지 목각장식이 발견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라고 한다.

이걸 알고 온 길은 아니었지만 이 전 시장 일행은 '황금돼지의 해'인 올해 복을 준다는 목각부터 유심히 살펴본 뒤 성타스님의 방에 들었다.

차를 마주하고 앉아서도 돼지 얘기는 계속됐다. 성타스님이 황금돼지 모형을 이 전 시장에게 선물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 지방지 기자가 '서유기'의 저팔계(돼지를 의인화한 소설 속 주인공) 얘기를 꺼냈고, 이에 이 전 시장은 돼지 모형을 쓰다듬으며 "나한테도 악귀가 많아서…"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 이방호 의원이 '악귀'='검증하자는 사람'이란 해석을 달면서 이 전 시장의 발언이 미묘한 어색함을 낳은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주자 검증을 외치는 의원들 중에는 박근혜 전 대표 측 인사가 많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이 전 시장은 무심결에 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4.25 재.보선 이후 당내 혼란 상황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싶어 하는 스트레스 심리가 느껴진다"는 해석도 내놨다. 경주 이씨 시조 제사에 참석한 이 전 시장이 햇무리를 발견하고 하늘을 가리키자 전국에서 모인 종친회원 8000여 명이 "길조다" "올해 이 전 시장에게 좋은 일이 생기겠다"며 박수치고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이 전 시장의 경주행에는 캠프의 좌장 격인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도 동행했다.

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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