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위 불참,남북합의서 위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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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은 29일로 예정됐던 제460차 군사정전회의에 아무런 예고없이 불참함으로써 정전협정과 관례를 위반했다.
정전협정에는 어느 한쪽이 회의개최를 요구하면 날짜를 수정제의할 수는 있으나 회의를 거부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또 한쪽의 제의나 수정제의에 답변이 없으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되어 회의가 열리는 것이 관례였다. 그 결과 53년 휴전이래 39년간 회의가 한번도 거부된 적이 없었다.
이번의 경우 지난 22일의 비무장지대 무장침투사건이후 우리측이 회의를 제의했을때 북한측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관례로는 29일에 회의가 성립됐어야 옳다.
이러한 북한의 거부 태도는 정전협정과 관례뿐 아니라 지난 2월19일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위반이기도 하다. 남북합의서 제5조는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회의불참 속셈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의제 자체가 북한의 비무장지대 침투문제이기 때문에 회의에서 궁지에 몰릴게 뻔했다. 회의에는 한국군의 황원탁소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하게 되어있다. 북한이 회의에 나오면 그동안 반대해온 한국군 장교의 유엔군측 수석대표 취임을 받아들이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구나 한국군 수석대표와의 첫 회의에서 수세와 궁지에 몰리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정전위회의를 보이콧 함으로써 두가지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역행하는 과오를 범했음을 알아야 한다.
우선 현 휴전체제 준수를 약속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면위반이다. 최근 북한은 대남비방방송,비무장지대 침범,핵재처리시설 보유 등으로 연이어 이 합의서에 정면 도전해 왔다. 이는 앞으로의 남북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정전회의 불참은 휴전이후 지속되어온 정전질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상황이 불리하다는 이유로,또는 한국군장교가 수석대표가 됐다고 해서 회의참석을 거부하는건 휴전체제를 관리해온 기본장치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미군장교가 수석대표일 때는 응하면서 한국군출신 수석대표를 거부하는 것은 무슨 사대적 망상인가.
양쪽 수석대표는 각각 해당 군사령관이 임명하게 되어있고 한국군 장교인 수석대표도 유엔군사령관이 임명한 대표다. 더구나 한국군은 휴전당시에도 명백한 교전주체였으며,현재는 전 전선을 맡고 있다. 따라서 한국군출신 수석대표임명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음을 넘어 현실적으로 극히 타당한 조치다.
북한은 군부의 탈선행위를 막고 빨리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휴전체제를 준수하고 대화에 성실하게 나서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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