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융과 경제원칙의 회복/김수길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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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때 사람들은 『그런다고 해외건설 붐이 되돌아올까』하고 묻지 않았다.
또 『그런다고 해운산업이 되살아날까』라고도 회의하지 않았다.
다만 끝내 한은특융까지 나가게 된 상황을 원통해 하며 『다시는 실물부문에 이처럼 큰 부실을 쌓아놓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숙연해 했다. 지난 87년 해외건설과 해운산업의 부실을 정리할 때의 이야기다.
투신부실 해결을 위한 27일의 한은특융 결정도 그 당시와 구조면에서는 다를바가 없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과연 주가가 회복될까』라는 회의가 판을 치고,실제로 27일 하루 폭등했던 주가가 28일과 29일 다시 꺾여 내려가자 『특융의 약효가 하루에 그쳤다』는 어이없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민자당과 정부는 고개를 숙이고 국민에게 미안해 하는 기색으로 내놓아도 모자랄 한은특융을 마치 김영삼대통령후보가 무슨 「큰 건」이나 하나 하듯 발표하면서,증권저축 한도의 확대라는 증시부양까지 섞어놓아 「초상집」처럼 숙연해야 할 분위기를 「잔칫집」처럼 만들어 놓았다.
한은특융까지 나가는 마당에 다시는 12·12같은 조치가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해야 마땅할 것을 꼭 12·12의 재판처럼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해외건설이건,투신이건 부실을 정리한다는 것은 누가 예뻐서 하는게 아니고 누구 하나만 좋으라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물이 깨끗해야 고기들이 건강하게 놀 수 있고 그래서 물을 오염시키는 찌꺼기는 그때 그때 건져내져야 하는데,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어느날 보니 물밑바닥에 쌓이고 쌓인 찌꺼기가 너무 많아 그냥 있다가는 고기들이 다 오염되어 물에 뜰 판이라 할 수 없이 큰 대가를 치르며 오염물질을 걷어내는 것이 바로 부실정리다.
평소에 그때그때 찌꺼기를 걸러내는 것이 곧 금융의 심사기능이고,따라서 부실의 기미가 있는 기업을 도산시켜 경제에서 「퇴장」시키거나 경제상황에 따라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이를 인위적으로 받치지 않고 놓아두는 것이 건강한 경제를 일구는 기본이다.
7년만에 다시 한은특융을 일으키면서 당정이 명심해야 할 것은 그같은 경제원칙의 회복이지 주가의 회복이 아니다.
투신 부실의 해결은 증시가 자생적으로 속살이 붙도록 하자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주가를 부추기자는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87년 대선 때 당시 노태우 민정당후보가 국민주 보급에 앞장선 결과 결국 주가에 발목을 잡히고 만 것처럼,김영삼대통령후보도 혹시 대통령이 된다면 언제고 증권저축에 가입한 모든 근로자들에게 발목이 잡힐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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