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에 맞는 옷을 입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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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23면

한 칸 사무실에서 기업 탐방도 하지 않고 경영진과 거의 대화도 하지 않았던 투자자가 있었다. 인터넷도 쓰지 않고 오로지 기업의 재무제표만 들여다보며 투자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도 45년간 고객의 돈을 721.5배로 불려주었다. 전설적인 가치투자가 월터 슐로스의 얘기다.

저평가주 발굴의 대가 월터 슐로스

슐로스는 1955년 슐로스 합자회사를 만들어 2001년까지 연평균 15.7%의 투자수익률을 올렸다. 73년에는 아들 에드윈이 합류해 단 둘이 펀드를 운용했다. 45년간 굴리던 펀드를 해산한 사유도 이채롭다. “2001년에 아들이 나에게 더 이상 싼 주식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펀드를 굴릴 이유가 없었다.”

슐로스는 철저히 저평가주만 매입하는 스타일을 고집했다. 장부가치에 비해 싸게 거래되는 주식을 찾아 4~5년 동안 보유했다. 그리고 주가가 두 배가량 오르면 더 오를 것이란 판단이 들어도 미련 없이 처분했다. 이런 매매 스타일은 자신의 스승이자 가치투자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으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슐로스는 “그레이엄의 접근법은 대박 종목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오로지 돈을 두 배로 불리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종목 수도 많게는 100개 안팎을 유지했다. 이는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하길 좋아하는 자신의 친구 워런 버핏과 사뭇 다른 것이다. 버핏은 ‘평생 보유할 가치가 없는 주식은 단 10분도 소유하지 말라’는 투자원칙을 갖고 있다. 반면 슐로스는 버핏이었으면 전혀 쳐다보지 않았을 2류 주식이라도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매입했다. 슐로스는 자신과 버핏의 스타일을 두고 “나는 많은 종목을 보유했다. 버핏은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았다. 버핏만큼 큰 수익을 내진 못했지만, 나는 내 편한 방식대로 할 따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슐로스는 또한 철저히 고객 지향적인 인물이었다. 사무실 운영비를 최소로 줄이고 수익이 나지 않은 해에는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슐로스의 고객 중에는 3대가 같이 투자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두 가지 투자 아이디어를 준다. 하나는 장기투자의 묘미다. 연평균 15%의 수익률로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줬다. 또 하나는 자신의 몸에 맞는 투자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레이엄 밑에서 같이 일한 버핏과 슐로스의 투자 스타일은 전혀 딴판이다. 슐로스는 자신의 몸에 맞는 편한 투자방법을 찾아 그것을 오랫동안 고수했기에 탁월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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